마스크로부터 자유를 얻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온갖 전염병에 몸서리치고 있다.
독감에 고생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한 것 같은데, 펄펄 열이 끓어오른다.
신나게 수영 수업에 들어갔던 온이는 수영 수업이 끝나자 팔로 온몸을 감싸고 턱을 떨며 나왔다.
대뜸 찾아온 더위에 팥죽땀을 흘리던 녀석인데.. 엄마는 깜짝 놀라 이마를 짚어봤다.
이마가 너무 뜨거워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등을 만져보니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분명 수영 들어가기 전까지 열도 없었고, 컨디션도 좋았는데..'
턱을 덜덜 떨던 녀석이 늘어지니 마음이 조급해졌고, 부랴부랴 다니던 소아과로 갔다.
그제야 열을 재보니 39.8
마스크 벗는 날부터 어디서 옮았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너 아니면 나,
나 다음에 너.
차례만 다를 뿐, 매번 두더지잡기에 걸리 듯 전염병에 걸리다 보니 번호표 뽑고 드디어 순서가 되었나 보다 한다.
다만, 열이 나면 당연하게 콧구멍부터 찔러야 되니,
아픈 것보다 면봉을 보고 바들바들 떠는 너를 붙잡아야 할 힘이 더 들 뿐이었다.
새벽 사이 온이는 열이 40.5도가 되었다.
눈은 떠지지 않는데, 몸은 반사적으로 일으켰다.
늘어진 아이를 일으켜 해열제를 먹이고, 따뜻하게 데운 수건으로 온몸 구석구석 닦았다.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떠는 너의 몸을 닦고,
날이 밝아져 창 밖이 어둠을 뚫고 푸르스름한 색이 비치자 온이가 말했다.
"엄마 밖이 파란색인가.? 창문으로 파란색이 들어와"
온이는 세상이 파란색에 갇힌 시간을 처음 맞았던 거다.
그리곤 동그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파란색일 수 있지?"
엄마는 지친 와중에도 너의 표정과 너의 말투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네가 놀라워하던 푸르스름한 시간을 엄마는 가장 좋아했다.
칠흑이라고 말하는 짙은 시간에 출근을 하던 때가 있었고,
스스로 그 시간에 일어났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오늘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여간해서 잘 일어나 지지 않는다.
의지가 없거나, 일어날 이유를 못 찾았거나 아니면 둘 다..
아니, 거기에 체력저하까지.
아니다, 알람소리가 안 들리는 것까지 추가.
여하튼, 열이 내려져야 엄마는 마음이 놓이니까 엄마는 네 몸의 열기를 모조리 빼앗듯 닦았다.
필요이상으로 들끓는 열만 뺏으려고 했는데, 잠도 빼앗는 바람에 우리는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했다.
학교 이야기, 반 친구들 이야기, 만들기 했던 이야기, 좋아하는 책 이야기.. 포켓몬스터까지.
엄마는 평소에는 잘 듣지 못했던 온이의 이야기를 가득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가 너무 좋아. 엄마 사랑해"라며 품에 파고 들어서 행복했고,
필요한 순간에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열이 내려 다행이고, 고마운 기분은 몽롱함과 바꾸어
오랜만에 너를 품에 꼭 안고 잠이 들었다.
구내염으로 고생했던 그날의 새벽이 생고생이 아니라,
파란 세상을 본 특별함으로 기억하는 너의 생각이 더없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