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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Nov 16. 2020

가을이 빛나는 밤

함께해서 좋은 가을 밤.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은 날씨.

그래서 집을 나서 본다.


서로 얼굴 맞대고 하하 웃기만 한다면 집에 있어도 나쁘지 않겠지만

에너지 넘치는 사랑하는 우리 오빠들.

소파에서 번지점프를 시도하거나 책상과 소파 사이에 오작교를 만들기 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형제간, 부모 자식 간 쌍심지를 켜기 전에 그리고 이웃 간 얼굴 붉히기 전에 말이다.


그런데 계획이 없다.

즉흥적이니까..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엄마가 게으르다. (쓰고 보니 치명적인 단점이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가 엄마보다 실행력이 좋고 계획적이고 규칙적이라는 것.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또 다행이라는 생각과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다.

일단 차를 도로 위에 올리고 언젠가 가볼까 했던 그곳. 퍼스트 가든으로 출발해 본다.


같은 마음으로 나왔을까.

자유로가 자유롭지 못하고, 달리고 싶은 차들은 도로 위에 빼곡하다.


도로 사정과 퍼스트 가든 주차장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도착했다는 기쁨과 입장 줄을 통과 한 기쁨.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과 정수리 시린 느낌도 어쩐지 상쾌했다.


유모차를 끄는 가족들도 있고, 예전의 우리처럼 연인도 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서 예전의 우리 모습도 보이고, 얼마 전 우리의 모습도 보였다.

'나의 시간들이 이렇게 모여서 지나왔구나' 남편과 손잡고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온이와 유는 요리조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감상에 젖는 건 그만 접어두고, 녀석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각자 한 명씩 마크하며 종종걸음을 하는데도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전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온이와 유는 물고기 밥을 주고 주고 또 주고, 새 모이도 토끼 먹이 계속 주었다.

주머니에서 돈 세는 줄 모르고 자꾸만 먹이를 사고, 언제 쓸지도 모를 비누도 만든다.

찬바람을 정통으로 맞아가며 코를 훌쩍이고 다리를 꼬면서도 자꾸만 체험을 한다.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도 잠시 이런 체험에 얼마나 많은 갈증을 느꼈는지 아이들의 행동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기분전환이라고 느꼈던 것들을 온이와 유 역시 체험과 활동을 통해 느끼는 듯했다.

그네에 앉아 한없이 웅크린 자세로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뭉클.' 아이들의 조금 큰 모습을 보는 것으로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

엄마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고, 이제는 이렇게 뒷모습을 바라봐주어야 할 시간이 더 많아지고 길어지겠구나 이렇게 품 안의 자식이 되어갈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체험존을 지나기 무섭게 나타난 놀이동산에 아이들은 웃음이 떠나지 않고, 지나치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다 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빗나가고 말았다. 

놀이기구 체험 역시 놓치지 않았다.

지나치려 했던 마음이 미울 정도로 아이들의 표정을 밝고 환하다.

온이와 유는 몇 안 되는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하고, '챌린지'에 도전했다.

헬멧을 쓰고 긴 줄 하나에 의지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또 마음이 울컥하다 눈물까지 글썽인다.

'언제 저렇게 컸지?'


오늘 대체 몇 번이나 울컥울컥하는 건지.

엄마의 시도 때도 없는 감정 기복이 보이지 않는 두 아들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런 오이와 유에게 엄지손을 치켜들었다.

제법 긴 시간을 머문 거리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감동이라 엄마는 자꾸만 마음이 찡긋찡긋 해진다.


참으로 주책맞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계절을 건너뛰었고, 시간을 도둑맞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과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보인다.

'아 온이와 유는 또 이만큼 자랐구나.'


집에서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던 모습들이

낮보다 아름다운 밤에

너희의 자람이 드러나고, 엄마의 감수성은 폭발한다.

깊어가는 가을밤.

너희와 함께 하는 빛나는 밤.

예쁜 건 언제나 같이 보고 싶은 오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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