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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Nov 18. 2020

가을 밤은 달콤한 밤.

가을, 밤줍기 체험

"얘들아, 우리 주말에 뭐 할까?"라는 아빠의 말에

온이는 망설임도 없이 "우리 밤 따러 가요."라고 말했다.


그간 고구마 캐기 체험을 했고, 조개 캐기 체험을 했다.

귤 따기 체험도 했고, 방울토마토도 키웠다.

고추도 따고, 가지도 따고, 호박도 땄다.

하다 하다 증조할머니 댁 마당 남천나무 열매도 맥문동 열매도 몽땅 땄다.

농사 지으려고 정돈해놓은 밭에 먼저 뛰어들어가 맥문동 열매를 밭고랑에 심고,

밭고랑 사이를 호미와 삽으로 땅을 파내 지렁이도 잡고, 

마당 잔디에 있는 메뚜기도 여치도 사마귀도 잡았다.

밭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온이와 유의 행색도 엉망진창이었다.


우리는 올해도 계절 틈틈이 자연에서 뛰었다.


집에는 토마토를 걷어낸 자리에 파씨를 심어 파를 키우고 있다.

온이는 가을이 되면 밤을 따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밤을 따러 가자고 했다.

이렇듯 계절마다 체험하는 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다.


"밤?" 


"네! 발로 이렇게 밟아서 벌리면 밤이 있잖아요? 그 거를 조심조심 줍는 거예요. 가시에 찔리지 않게."

온이는 눈썹을 모았다 폈다 야무진 입술 모양을 해가며 설명을 했다.


가고 싶다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는데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체험 끝물에 체험이 가능한 농장을 찾아 시흥, 김포... 몇 곳을 전화했지만 체험은 이미 끝.

이제는 거리와 상관없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은 곳이 경기도 용인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집 앞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일찍부터 출발했음에도

전주를 갔다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에 우리는 계속해서 도로에 있었다.

용인이 이렇게나 멀었을까..

도로 사정 덕분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 도착하고 보니 오히려 볕이 따뜻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미리 쪄놓은 밤을 종이컵 가득 담아주셨다.

밤 줍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밤 껍데기를 깨물어 이로 살살 긁어먹었다. 말 그대로 꿀밤이라 입은 먹기 바쁘고,

발은 걸음을 옮기기 바빴다.

산 좀 다녀본 온이와 유는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지팡이 삼을 큰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녔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봤네, 내가 먼저 주웠네.' 하며 나무 작대기를 들고 티격태격한다.


'아오! 이 형님들아. 이러다 일곱 살 아니고 다시 다섯 살 되겠다'며 한소리를 듣고서야 일단락..


캠핑장에서 밤나무 몇 그루, 야산에서 밤나무 몇 그루는 보았어도

온 사방에 밤나무가 가득하고 발에 치이는 것이 알밤이라 신기한데,

뒤통수가 예쁜 아이들을 보고 왜 알밤 같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탐스러운 밤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이 넓고 넓은 곳에 달랑 우리 넷 뿐이라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에 있는 메뚜기를 잡겠다고 펄쩍 뛰는 소리,

밤을 주으며 조잘거리는 말소리, 걸음을 옮기는 소리

모든 게 선명하고 좋았다.


농장은 가파르지도 않고 경사 지지도 않아 온이와 유가 다니기에도 좋았다.

온이와 유는 양손에 어린이용 목장갑을 끼고 저 나무를 살피고 밤을 주워 껍질도 깠다.

밤가시가 발목을 찔러 몇 번을 신발을 벗어 가시를 꺼내 달라던 녀석들은 몇 번을 찔리더니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스스로 신발을 벗어 가시를 뽑고 있었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다고, 밤 줍기도 완벽한 때가 있다는데 사실 우리는 조금 그때를 놓쳤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밤 줍기 체험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나무에 달려 있는 밤을 털지 않아도 되어 좋았고, 한적해서 좋았다.

이렇게 온전한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도 주웠다.

그러다 어느새 한 망 가득 밤으로 가득 채워졌다.

온이와 유는 주웠던 밤을 다시 쏟아 알이 큰 것은 망 속에 넣고 알이 작은 것들은 바위 위에 그리고 나무 밑에 갖다 놓았다.


"엄마 여기에 두면 다람쥐랑 청설모가 찾아 먹겠지?"


"응"


온이와 유는 배부르게 많이 먹고 추운 겨울 잘 보내라고 떨어진 밤을 주워다 나무 곳곳에 작은 바위 곳곳에 얹어 놓았다.


"엄마 여기 사는 다람쥐는 먹을게 많아서 진짜 행복하겠어요."


"그러겠다."


"먹이가 많아서 겨울이 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내년에도 밤 줍기 하러 오자는 너희가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풍성함을 알아가는 것 같아 좋고,

'같이' 살아가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아 좋다.

생밤을 오도독오도독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비록 큼직큼직하고 동글동글한 밤 껍데기를 쳐내느라 아빠는 물집도 생기고,

손가락도 손목도 아팠지만 나란히 앉아 밤을 깠던 시간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좋았다.

그러니 안 할 수가 없겠다.

우리 내년에 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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