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 원 밖에 없지만 가방은 사주고 싶어서

by 자잘한기쁨

5월이 되자 유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내 생일'이라고 썼다.

너는 5월은 너무 기쁘다고 했다. 어린이날도 있고, 생일도 있어서 선물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드디어 내 생일이라니!"

행복하고 기쁜 표정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오를 것만 같은 목소리와 몸짓까지.

사실 5월은 너희의 달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여행도 갔고, 선물도 많이 받았다.


"벌써 유치원에서 제일 큰 형님이 되었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어?"


"엄마 나 생일에 선물 뭐 사줄 거예요? 어린이날에는?"


"네가 갖고 싶은 거 사야지."


"그럼 두 개? 갖고 싶은 게 열 개도 넘는데 그중에 두 개를 골라야 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어린이날에, 생일에. 선물 받을 날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네 표정을 보니 문득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너희의 표정처럼 그렇게 기뻤던 날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니 그랬던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5월이 된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좋아서 그 기쁜 마음이 감춰지지 않는 걸 보니 나는 더 행복해졌다.

대단한 걸 갖고 싶어 할 나이도 아니고, 기껏해야 레고 아니면 변신로봇일 테니 인색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요? 내가 사줄게요"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엄마 예쁜 가방 사줄까요?"


"가방 사줄 거야?"


"네! 엄마 가방은 얼마 있으면 살 수 있어요? 한... 백만 원? 아니면 천만 원?"


백만 원과 천만 원의 단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손가락을 꼽으며 일 십백천 만 십만백만천만... 골똘히 생각하더니 손가락이 많이 접어지니까 비쌀 거라고 했다.


"엄마 천만 원이면 몇 개 살 수 있어요?"


"한 개?"


"엄마 백만 원짜리로 열 개 살 수는 없어요?."


"살 수 있지. 근데 너 돈 있어?"


"네. 저 있어요"


"얼마 있어?"


"팔천 원이요."


귀여웠다.

백 원, 오백 원, 천 원 겨우 모아서 동전을 세다가 팔천 원이 된 며칠 전, 작은 눈을 번뜩이며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던 녀석이 전재산을 주겠다니..

팔천 원을 모으기 위해 애써온 시간, 오백 원짜리 뽑기에 탕진하지 않고 참아온 너라서 팔천 원의 가치와 의미를 너무 잘 아는 엄마는 그저 그 말에 또 감동을 먹고 말았다.


"엄마 지금은 팔천 원이지만 금방 모을 수 있어요. 천만 원은 너무 멀리 있는 거 같으니까 나중에 커서 사줄게요 내가 오십만 원까지 모아볼게요."


"응 고마워"


"근데 엄마 만약에 오십만 원이 생기면 어디 가서 가방을 사면 돼요?"


"백화점에 가서 사면 되지"


"그럼 내가 오십만 원을 주면 가방을 바꿔줘요?"


"오십만 원이 넘지 않으면 살 수 있지"


"어떤 거 사면돼요?"


"백화점 가면 1층에 줄이 제일 긴 가게가 있을 거야. 거기서 사면 돼"


"네. 오십만 원 생기면 그때 다시 알려주세요"


"응"


오십만 원 모아서 엄마 가방을 사주겠다는 일곱 살.

오십만 원이 든 저금통을 가져다주면 가방으로 바꿔주는 줄 아는 일곱 살은 호기롭다.

오십만 원을 본 적 없고, 돈의 가치를 모르는 너라서 귀엽다.

당연히 지켜지지 않을 걸 알지만 그저 그 말이 고맙다

엄마는 이미 가진 거나 다름없는 마음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을 남편아, 나 가방 욕심 없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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