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탱고에서 핵심의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걷기’(Caminar)다. 화려한 발놀림과 멋진 피구라가 탱고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탱고는 걷는 춤이다. 모든 동작은 걷기를 기반으로 연결되며, 기본이 탄탄해야만 다른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탱고에서 걷기가 흔히 '탱고를 하는 것'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탱고의 전설 파블로 베론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댄서는 얼마나 기술을 잘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걷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걷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걷는다는 것은 공간을 채우고, 상대와 교감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리더는 자신의 걸음으로 파트너를 안내하며 공간을 열어주고, 팔로워는 그 길을 함께 느끼며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결국, 좋은 춤은 좋은 걷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파트너와의 대화이며, 균형이며, 흐름이다. 걷기의 질이 곧 춤의 질을 결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나 걷기가 중요하면 리더들 사이에는 이런 말까지 있다.
"남자가 잘 걸을 때, 여자는 그의 품 안에서 죽는다"
걷기를 잘해야 탱고를 잘 출 수 있다. 탱고에서 걷기의 본질은 단순한 스텝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코어를 단단히 하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상대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중심이 흐트러지면 상대에게 기대게 되고, 결국 둘 중 하나는 불필요한 힘을 써야 한다. 탱고에서는 둘이 함께 걷지만,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는 공간을 만들고, 팔로워는 그 공간을 채운다. 만약 어느 한쪽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한 사람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 탱고를 배울 때, 한 시간을 무작정 걷기만 했다. 바닥을 누르면서 걷는 연습과 무게를 실어 움직이는 방법을 익혔다. 선생님과 걷기를 하면 바닥을 밀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 느낌으로 걷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걷기는 쉽지 않았다. 무게를 누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상대와 맞춰 걷는 것도 어려웠다. 또 너무 많은 힘을 주었을 때 상대가 밀려 나가는 느낌이 들어, 그 중간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무게의 중심을 정확히 잡고, 그 중심축을 유지하며 걸어야 한다고 했다. 상체의 힘을 빼고, 하체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그 감을 잡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 원리는 우리의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음의 상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마음의 중심축을 잡기 위해서다. 중심축이 있어야 마음을 사용할 때, 그것이 어딘가로 달아나지 않고, 붕 뜨지도 않는다.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필요할 때만 마음을 사용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명상에서는 이 중심축을 잡는 것을 ‘앵커를 건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축이 제대로 잡혀 있다면, 감정이 생겨날 때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살필 뿐이다.
탱고를 출 때도 이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탱고는 파트너십이 중심이기 때문에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기 시작하면 춤을 추기가 어려워진다. 상대가 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걷기를 살펴야 한다. 자신을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결국 상대를 탓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 되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춤을 추게 된다. 탱고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춤이지만, 그 조화의 출발점은 나에게 있다. 내가 안정되면 상대도 안정될 수 있고, 내가 흔들리면 상대도 불안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서야 상대까지도 감싸 안으며 함께 걸을 수 있다.
좋은 걷기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음악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며 걷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깨어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이는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걸음이 흐트러지면 관계도 흐트러지고, 내가 중심을 잃으면 결국 모든 균형이 무너진다. 걷기는 탱고의 본질이며, 탱고는 곧 우리의 삶이다. 좋은 걸음이 좋은 춤을 만들고, 좋은 춤이 좋은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바로 자신을 제대로 세우는 것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