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파트리토
탱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시작에는 ‘콤파트리토(Compadrito)’가 있다. 콤파트리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의 도시 주변에서 살아가던 남성형 이미지의 상징이었다. 유럽 이민자와 크리오요, 아프리카계 후손들이 섞여 형성된 이 하층민 계급의 남성들은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서 살아갔다.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생존을 위해 싸움을 일삼았던 존재. 하지만 동시에 그는 도시적 세련미와 거리의 야성, 남성적 허세와 우울한 낭만이 공존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콤파트리토는 단지 사회적 계층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정서이자 태도이며 몸짓이었다. 날카로운 모자챙 아래 어두운 눈빛, 번뜩이는 구두 끝, 칼끝 같은 시선과 어깨에 걸친 재킷. 그의 몸짓 하나, 걸음 하나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다. 이 도시의 끝자락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사랑하며, 살아 있다.’ 그는 외로운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들의 문화에는 감정의 토로와 세상에 대한 저항이 배어 있었다.
그런 콤파트리토가 만들어낸 문화의 결정체가 바로 탱고다. 초창기의 탱고는 사교계의 고상한 춤이 아니었다. 항구 근처, 매굴과 술집, 뒷골목에서 형성된 땅게로들의 춤이었다. 리듬은 불안했고, 멜로디는 날이 서 있었다. 악기는 조악했고, 춤은 거칠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진짜 삶이 들어 있었다. 희망과 체념, 사랑과 상실, 분노와 그리움이 탱고라는 이름 아래 끓고 있었다.
콤파트리토는 그 모든 감정의 집합체였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칼을 빼 들었으며, 사랑에 빠지면 영혼까지 바쳤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그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탱고를 추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걸음이 탱고가 되었고, 그의 한숨이 반도네온의 음이 되었으며, 그의 비틀거림은 피봇이 되었고, 그의 절망은 포옹이 되었다.
거친 영혼은 감정을 오래 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감정이란 본래 방향을 잃기 쉬운 것,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콤파트리토의 감정은 탱고에 남았다. 말로 하지 못한 외침, 눈물로 대신할 수 없던 고백, 가슴속 깊이 담아두었던 상실감—모두가 음악과 춤으로 흘러나왔다.
감정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쌓이면 병이 된다. 마치 신체가 배설하지 못하면 병들듯이, 감정도 그렇게 무너진다. 탱고는 어쩌면 그 감정의 ‘배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언어로, 몸짓이라는 문장으로, 이들은 마음을 내뱉었다. 그것은 단순한 춤이 아니었다. 치유였고, 고백이었고, 의식이었다. 탱고는 도시의 바닥에서 끓어오르던 감정들의 숨구멍이자, 콤파트리토의 생존 방식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숨기고 산다. 괜찮은 척, 무심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아무리 감정을 눌러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쌓이고, 고이고, 결국엔 터진다. 탱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느끼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콤파트리토가 그랬듯이.
그는 가난했고, 거칠었으며, 때로는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 감정을 춤추는 법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탱고의 음표와 동작, 그 깊은 아브라소 안에서 살아 있다.
탱고는 말한다. "너의 감정을 숨기지 마라. 그건 언젠가 네 몸으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탱고를 추며, 그 오래된 감정의 그림자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마주한다.
탱고를 출 때,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한다.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전율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속으로 운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만나서 춤을 만든다. 그 속에는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있다. 마음으로 추는 춤이 있다면, 그게 바로 탱고이지 않을까.
어쩌면 탱고를 추는 우리 모두가 콤파트리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