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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Jul 01. 2024

메디오 루나 - 오쵸 5

"아진 교무님, 아니, 아진님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환속하셨다고."


"뭐, 그렇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고요.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김수호 신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최대한 아래쪽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동등했던 위치가 동등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그에게 떳떳할 수 없었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말, 전 정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허투루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으시니까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해서 걱정만 했었습니다. 서로 수학 과정에서부터 교류했던 친우였는데 갑자기 사라지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 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정이 있었어요."


"무슨 사정이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물어볼 곳도 없고,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신부님, 누군가에게 평범한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기적입니다. 단지 제게는 기적이 없었을 뿐이에요. 단지 그뿐입니다."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마음고생이 심했겠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혹시 수녀님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리가요.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이성의 감정과는 다릅니다. 가족과 사랑에 빠질 리가 없잖아요."


"신부님, 누군가는 같은 줄끼리도 사랑을 느끼기도 해요. 하물며 저희들은 한 단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지 가족은 아니잖아요. 그랬습니다.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한 제 잘못이었던 거죠. 이게 지금 제가 겪는 벌인 거겠죠."


"잘,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묻지 않도록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본질이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이죠. 믿음이 있다면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 진리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

김수호 신부가 내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그의 온화한 눈빛을 보니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녹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었기에 그에게 하지 못할 말들도 있었다. 그의 자비로도 해결되지 못할 심연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을 모두 남에게 전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알든 알지 못하든 그림자처럼 어두운 심연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그에게 답했다.


"믿음, 중요합니다. 중요하죠. 하지만 때때로 현실은 더 소설 같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다만, 앞으로 계속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저를 보신다면 제가 더 힘이 들 것 같아요.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꽉 잡아 들어오는 그의 손을 슬며시 놓으며 말했다. 그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눈에 담겼다. 그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신부님의 마음 잘 알았습니다. 위로해주시고 싶은 마음도 알았고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없습니다. 이제 그냥 출판일을 하는 일반인이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 그래요 신부님 성당의 신도분들을 대하듯 대해주세요. 그게 서로 마음 편할 것 같아요."

그가 말없이 눈으로 말을 건넸지만 그의 눈을 피하며 그의 말을 막았다. 그 말을 끝으로 잠깐의 침묵이 바닥으로 깔렸다. 너무도 찰나가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탁자 위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다고 그에게 설명하고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엘리아나가 보낸 메시지가 와있었다.


[오늘은 연습 언제 할까요?]

문자를 확인하고 심호흡을 했다. 어쩐지 안심이 되는 문자에 가슴을 쓸며 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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