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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Jun 26. 2024

메디아 루나 - 오쵸 4

"사랑은 중요한 거죠. 하지만 어떤 사랑인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이란 말로 포장한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요. 오욕 번뇌에 휩싸인 생각과 행동들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집착은 사랑이 아니란 말이 있잖아요. 대부분은 집착인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자윤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날 선 말투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기분을 언짢게 했다. 표정 관리를 하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성직자이시다 보니 역시 고차원적인 해결방안들이 많네요. 그렇지만 자윤 교무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답변이 자칫 일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 답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윤 교무님과는 다르니까요. 꼭 사랑이 고차원적이어야만 할까요? 같이 있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내 것라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도 사랑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마음의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기 계신 네 분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자제하고 단련시켜 오신 분들이에요. 기도하고, 묵상하고, 명상하고, 공부하며, 자신을 단단히 단련하면서 내면의 문제들을 해결한 경험이 있으세요. 그 경험이 있기에 청년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거죠. 거기에 굳이 대중과 우리를 분리하려는 인식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 결국 모든 건 통하기 마련이에요."

표정의 변화 없이 자윤 교무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녀의 말은 마치 누군가를 겨냥한 말 같았다. 조금씩 얼굴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귀가 뻘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제가 듣기로는 청년들과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요? 마치 청년들의 사랑은 집착이고, 자신의 마음에는 그런 게 없는 듯이 말씀하신 것 같아서요."

최대한 웃으면서 좋은 말을 하려 했지만, 어느새 감정이 상해버린 나는 나도 모르게 비꼬듯 그녀에게 말했다. 감정이 상했기에 흥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통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애써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혹시 스스로 생각하시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보통 우린 그걸 남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하죠."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조금씩 감정이 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완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말이든 입을 열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오른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짓누르며 나오려는 말을 막아서려 애썼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느끼며 이를 꽉 물고 있었다. 상황이 조금 이상한 듯 느껴지자 연훈 스님이 자연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모든 마음공부는 결국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배우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도 그걸 바라실 테고요. 사랑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도 사랑이고, 중생들의 갈애도 사랑이죠. 하지만 같은 사랑이라 해서 같은 결과를 불러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확연히 파악해서 우리에게 도움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조금 더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해서 나아가면 될 것이지요. 이것과 저것 나누기만 하다 보면 문제만 생기게 됩니다. 조금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면 좋을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면 됩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같이 고민해 보면 되겠죠.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겠어요. 허허."

연훈이 나선 덕분에 뱉으려던 말을 삼킬 수 있었다. 자애로운 그의 미소를 보며 조금은 감정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윤의 표정은 차가웠고, 나 또한 그녀를 곱게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맡은 일이었기에 이 자리를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자윤에게 사과했다.


"자윤 교무님,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일이 많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다 보니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중생의 어리석음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자윤에게 말했다. 자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과를 받아줬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율이 분위기를 환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스님, 스님은 결혼도 연애도 안 해보신 분이 왜 이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꼭,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건 아닙니다. 이 타고나는 것과 시물레이션을 통해 학습이란 게 가능합니다. 또 제가 지금이야 이렇게 머리를 밀고 있지만, 머리를 기르고 연애 시장에 나가면 모든 남자가 긴장해야 할 겁니다. 하하."

연훈과 정율이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옆에 있던 수호도 몇 마디를 거들며 분위기를 풀기 위해 힘을 보탰다. 그들 덕분에 조금은 정신을 차린 채로 무사히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도 바쁜 일이 있는지 서둘러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따라 문밖까지 나가 인사를 했다. 그들의 뒷모습이 모두 사라지는 걸 본 후에야 자리로 돌아와 짐을 챙길 수 있었다. 짐을 챙기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창문 너머 저 멀리서 누군가 다시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익숙한 실루엣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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