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에 친구가 생겼다

만달레이에서 찍은 가족사진

by 사십리터


현지인도, 외국인도, 여행자도... 미얀마에선 좋은 사람을 빈번하게 만난다.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지 않은 게 언제 적인지 기억도 안 난다. 어쩌면 미얀마에 살면 좋은 사람이 되는지도.



1. 안녕 차이나 소녀

낯선 곳에서 시작된 생리통 때문에 선잠을 잤다.

호스텔 방은 조금 눅눅했고 나는 예민했다.

아직 어두운 새벽녘,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시 잠이 깼다.

새벽에 들어온 옆 침대의 주인은 중국인이었다.

많아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나를 설레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자 예상대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녀는 합창하는 자세로 양손을 모으더니 "I love Korea!"라고 말하며 아주 기뻐했다.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같은 방의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수다를 떨었다.

모자를 쓴 것과 안 쓴 것 중 어느 것이 나은지, 아침을 먹을 건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순간 우리가 원래 아는 사이였나 싶을 정도로 친근하다.

내 짧은 영어 실력 덕에 긴 대화는 못했지만 그녀 덕에 아픈 건 잊고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그녀와 더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해 미안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상대였다.

체크아웃하는 길에 그녀의 침대에 짧은 인사를 담은 메시지의 남겨 보이지 않는 작별을 나누었다.



2. 픽업트럭 실패, 인력거를 만나다

오늘의 1차 목표 : 픽업트럭에 다시 도전!

그러나 오늘도 픽업트럭 잡기는 쉽지 않다.

몇 차례 시도 중 지나가는 인력거 아저씨가 말을 건다.

형식적인 몇 마디를 하다 보니 호기심이 동했다.

잠깐이지만 픽업트럭도 타봤으니 새로운 인력거를 타볼까?

아마라푸라까지 인력거가 갈 수 있나?

결국 내 속도에 맞춰 따라오는 인력거에 올라탔다.

승차감은 역시 별로다.

오토바이보다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은 좋지만 도로에서 가장 느려서 매연과 먼지를 더 먹게 된다.

나 때문에 무거워진 인력거를 끄는 기사의 숨소리가 다 들린다.

몸도 마음도 좀 불편해졌다.



3. 굴러라 굴러 자전거야, 마하간다용까지

미얀마의 아침은 '탁발'로 시작된다.

어떤 동네에 가도 스님들이 모여 다니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탁발은 불교 국가 미얀마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진귀한 문화지만 이른 시간에 있어서 아침잠 많은 사람들이 보긴 좀 어렵다.

그런데 만달레이 남쪽의 '아마라푸라'에 위치한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인 '마하간다용 수도원'에선 오전 10시에 탁발 행렬이 있다.

그것도 천여 명의 스님들이 참여하는 퍼레이드 수준의 행렬이다.

때문에 마하간다용의 탁발은 미얀마를 대표하는 커버 사진이자 여행자들의 관심거리다.

만달레이 여행자들은 이 탁발과 수도원 근처에 있는 1200m 가까운 목조 다리 '우베인 브리지'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군다.

나 또한 탁발을 보기 위해 이틀 째 시도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갈 줄은 몰랐다.

얕은 오르막 길에서도 힘들어하는 기사 아저씨를 보며 내 호흡까지 가빠지는 기분이다.

아저씨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힘들어하면서도 영업을 시도한다.

오늘 하루 근교 도시 투어를 함께 하자는 거다.

자기 집이 이 근처고 오토바이가 있으니까 내가 우베인 다리를 보는 동안 오토바이를 가지고 오겠단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만달레이 시내에서만 인력거를 끄는 모양이다.

침이 튀는지도 모르고 성실하게 설명하는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제 다녀온 사가잉을 제외하고 지금 가고 있는 아마라푸라와 잉와 2곳에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은 속도로 오늘의 첫 목적지인 '마하간다용 수도원'에 도착했다.

20170112_104247.jpg 수도원의 출입구

아슬아슬하게 탁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혼자 왔다면 길을 잃었을만한 규모였다.

아저씨는 수백, 수천 명의 식사가 만들어지는 주방부터 수도원의 구석구석을 안내해주고 탁발이 시작되는 곳까지 데려갔다.

미얀마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많은 관광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멀리서 첫 번째 발걸음이 다가왔다.

20170112_101917.jpg 첫번째로 등장 한 스님에게 모든 시선이 모인다

요란한 북소리나 알림도 없는 침묵 행렬이었지만 묵직한 움직임이 다가왔다.

처음 시작하는 발걸음은 무용수만큼 섬세하게 걷다 서다를 반복한다.

점점 많은 스님이 돌아오면서 걸음은 평범해진다.

빨라진 탁발 행렬 속도만큼 관광객들의 카메라도 바빠진다.

행렬이 길어지면서 스님들의 근엄하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고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도 보인다.

문득 셔터 누르던 손을 멈추게 된다.

작은 부처가 되어 걷고 있는 그들을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저렇게 수행하는 모습을 평생 봤다면 나도 신은 믿지 않아도 신앙심은 생겼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들이 들고 있는 발우에 과자, 믹스커피 같은 먹거리나 볼펜을 올려주고, 그 속에 담긴 가르침을 한 움큼씩 퍼간다.

주고 가는 것보다 얻어가는 게 더 많다.

밥 먹으러 가는 모습도 가르침과 배움의 자세여야 한다니!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면 이미 발 한쪽이 책상 밖으로 나가던 나는 역시 종교인은 못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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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스님들이 지나갈 때쯤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행렬을 마친 스님들이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있는 장소였다.

방금 전까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자승들이 나란히 닭다리를 뜯고 있다(미얀마에선 스님들도 고기를 먹는다).

밥 먹기 전은 나랑 다르지만 먹는 도중은 좀 동질감이 느껴진다.

20170112_103654.jpg 식사 중인 어린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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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와 추억이 뒤얽힌 다리

우베인 브릿지의 출발점이자 종점

수도원을 둘러본 뒤 근처 우베인 브릿지로 향했다.

호수 위로 높게 지어진 목조 다리는 일몰과 궁합이 좋다는데 난 정오의 햇빛과 함께 했다.

1km가 넘는 다리는 15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발을 견뎌왔다.

2~3명의 사람이 지나갈만한 폭에 난간이나 안전장치도 없는 낡은 나무는 학생들의 등하굣길이 되기도 하고 스님들의 탁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관광지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다.

다리 바로 아래는 한창 바쁜 시간

긴 다리 중간중간엔 벤치가 있고 그 옆엔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

이 다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다리 옆 풍경 때문이다.

주변이 모두 논, 밭이라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쪽에선 공을 차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호수를 이어주는 다리가 아닌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하지만 난 경치를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다.

무서웠다.

왜 나만 무서운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다리는 낡았다.

3m 아래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한 세기를 넘게 거센 발길, 자전거의 힘을 견뎌 온 다리는 많이 줄고 파여 있었다.

나무 폭도 제각각이고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줘도 될 만큼 다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잡고 갈 밧줄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사치다.

옆에서 뛰어가는 아이들을 만나면 내 심장이 너무 놀랬다.

꾸역꾸역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괴롭다.

출발점에 다시 서서 놀란 가슴을 과자 한 조각으로 달랬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면서 나무속 세월 속으로,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방법을 알고서야 평온을 찾았다.

걸음마다 1년씩 다리의 기억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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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의 나무 판 하나하나엔 사연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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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마을에 사는 미얀마 순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매일 다리를 건너던 미얀마 철수.

시집 간 딸이 잘 사는지 담장 밖으로 몰래 보고 온 어느 아버지가 건넌 다리.

먼 길 떠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한 어떤 어머니의 마지막 발걸음.

가난한 소녀가 처음 생긴 꽃신을 신고 신나서 뛰어 간 길.

어느 소년이 용돈을 받아 건너 마을로 군것질하러 가다 다리 밑으로 돈을 떨어뜨려 대성통곡한 일.

그런 희로애락이 이 다리에 있다.

나무 판 하나하나가 햇빛에 말라 수분이 빠져나간 만큼 그런 이야기들이 스며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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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간이 한번 더, 잉와

잉와 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들

우베인 브릿지를 다시 건너서 약속한 장소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인력거는 사라지고 오토바이를 데려왔다.

왜 오토바이가 아닌 인력거로 영업을 하는지 알 것 같은 낡은 물건이다.

크기도 작고 발판도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시동도 한 번에 걸리지 않는다.

조금 불안했지만 인력거보다 편하고르게 다음 목적지 잉와로 갔다.

잉와는 아바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다.

버려진 유적이 사방에 가득하다.

파고다가 가득한 도시는 얼핏 보면 바간과 비슷하다.

잉와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원래 잉와에 들어가면 추가로 마차를 대절해서 투어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난 타고 온 오토바이를 배에 태울 수 있어서 잉와 안에서도 투어가 가능했다.

기사 아저씨가 정말 알뜰하게 가이드 역할을 해줬다.

파고다 자체는 바간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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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했다.

관리를 안 했다기보다 방치한 느낌에 가까웠다.

사람의 손때가 아닌 자연의 바람과 먼지가 묻어 있었다.

사라진 왕조는 쓸쓸했다.

누군가 정성을 다해지었을 파고다는 떠돌이 개의 낮잠 장소가 되었다.

침묵과 고요 사이, 쓸쓸함과 외로움 사이, 황폐함과 황량함 사이 어디쯤의 분위기.

난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이 돌보지 않아 자연과 비슷해진 그 건물은 사랑스러움과 눈물을 함께 부른다.

그 파고다들은 건축물보단 오래된 나무를 닮았고 도시보단 들판에 어울렸다.

어느새 자연이 되어버린 파고다는 사람보단 동물들의 쉼터였다.



6. 기찻길 옆 오막살이

잉와에서 나와 호스텔로 돌아갔다.

저녁에 인레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려면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

아저씨는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인력거로 바꿔야 한다며 자기 집에 잠시 들렀다.

알고 보니 전날 길을 헤매던 기찻길 근처가 그의 집이었다.

골목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그의 집엔 가족과 이웃이 모여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나 때문에 아이들이 낯을 가린다.

그는 가족사진이 가득 걸린 방에 날 안내하고 의자를 내주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마당으로 나오니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한다는 가족들은 나에게 호의적이다.

나에게 준 홈메이드 요리, 이날 속이 안좋아서 기름에 절인 땅콩을 남겨서 너무나 미안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해줬다.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가 사진 한 장에 풀어진다.

잠깐이었고 아무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대화였다.

사진을 찍어주고 이제 떠나려는데 아저씨가 선물이라며 엽서 한 장을 준다.

뜻밖의 선물에 진심으로 놀랬다.

내가 그들에게 준 사진 한 장이 이런 느낌이었다면 내가 정말 잘한 거란 생각이 들만큼.

호스텔 앞에서 그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 시간이 더뎠다.

반나절 동안 함께 한 그는 분명 나의 친구이며 미얀마에 생긴 가족이었다.

기찻길 옆에 사는 다시 만나지 못할 나의 친구.

20170112_153309.jpg 그의 가족과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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