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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발리까지

나의 발리는

by 사십리터

발리는 어떤 곳이더라?

다녀온 지 1년도 안 지났는데 어떤 발리는 흐릿하고 어떤 발리는 오늘 아침에도 본 것 같다.

기억이란 원래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 순서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은 순서로 떠오르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한쪽 눈을 감고 발리의 어디가 소실점인지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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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나지 않는 발리의 기억을 꾸역꾸역 끄집어냈다.

그곳에서 나는 일출을 보고, 일몰도 봤다.

사색도 하고, 생각을 버리기도 했다.

걷기도 하고, 쉬기도 했다.

비몽사몽으로 다니기도 하고, 원 없이 자기도 했다.

사람도 만나고, 동물도 만났다.

혼자이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하기도 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도 했고, 배가 아프기도 했다.

같은 장소에서 극과 극을 오가는 그런 게 여행이니까.

나 한 사람도 한 곳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본 발리는 더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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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뭐 대단한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그저 놀고먹고 쉬었다.

휴양지란 원래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일이 없어야 미덕 아닌가 싶다.

그래도 별건 없는데 참 기묘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도 기분 나쁜 일부터 떠오르지 않는 걸 보아서 이 정도면 괜찮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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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한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더 할 말이 있었을 텐데 제대로 꺼내진 못했다.

그냥 태연하게 앉아 여행을 추억하기에는 2024년 후반부가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든 탓이었던 것 같다.

발리는 분명 행복이었는데 떠올리는 과정이 고통이었다.

그게 참 괴리감 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발리에서 지낸 한 달 남짓이 즐거웠던 건 확실하다.

조금 더 자세하게 쓰고 싶은 발리가 있어서 연재를 끝내지 못하고 미련을 떨었는데 그냥 이 정도에서 접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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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나는 진짜 발리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곳은 너무나도 철저한 관광지라 여행자 따위에게 진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적나라하게 본 건 교통체증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길다면 긴 여행을 했는데도 발리를 평가하기 힘든 이유가 그것이다. 여행으로는 발리를 평가할 수 없다.

솔직히 내가 아무 생각 없는데 발리가 알아서 영적인 체험을 내주지는 않는다.

확실히 말하면 발리만 가면 영혼이 정화되고 그런 일 절대 없다.

하지만 마침 그런 깨달음이 필요할 때 발리에 가면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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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발리 갈까 말까? 발리 좋아? 싫어?'

이 글을 보는 사람이 묻고 싶은 건 어쩌면 그 한 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묻는다면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발리가 안 맞을 것 같은데 억지로 가지 말자.

어떤 여행지가 즐거울지 짜증 날지는 전적으로 개인 취향이다.

그러니 애초에 별로 안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안 갔으면 좋겠다.

꾸역꾸역 다녀와서 발리 거기 볼 것도 없고 더럽고 싫더라 그런 말이나 뻑뻑해대며 남의 추억까지 오염시키는 여행은 하지 말자.

발리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그냥 좀 크고 유명한 휴양지다.

그것만 기억하면 당신이 발리에 가야 하는지, 갔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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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첫 번째 글을 쓰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에 1화로 모든 걸 대신한다.


https://brunch.co.kr/@jhp704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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