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 공통어 스마일
미얀마를 대표하는 관광지 바간
관광을 하루 포기하자 비로소 여행자 거리 바로 뒷골목에 숨겨진 진짜 바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밍글라바 바간...
바간의 둘째 날 아침.
같은 도미토리를 쓰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대충 세수만 한 뒤 아침을 먹으러 갔다.
전날 어중간한 시간에 먹은 볶음밥이 마지막 끼니라 잠에서 깨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바간의 도로가 보이는 식당엔 간단한 뷔페식으로 과일과 요리 몇 가지, 음료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 후 오늘 하루 뭘 해야 하나 고민을 시작했다.
마차투어가 만족스럽진 못했으나 더 이상 파고다 투어를 할 생각은 안 들었다.
우선은 낭우마켓에서 활력을 충전해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혼자 걸어가는 나를 보고 마차와 택시가 10번쯤 멈춰 선다.
운전사들을 물리치고 꿋꿋하게 걸어서 시장에 도착했다.
양곤의 시장에 비해 낭우마켓은 관광용 시장이 아닌 진짜 현지인들의 시장 느낌이 들었다.
관광객이 흥미로 사먹을만한 간식거리나 기념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처음 들어간 골목엔 쌀과 계란이 쌓여 있었고, 옆 골목에 좌판에서 생선이나 닭을 팔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생선을 토막 내서 내장까지 펼쳐 놓고, 생닭은 발과 머리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신기했지만 온갖 냄새와 동물들의 내장이 펼쳐져 만든 풍경은 오래 볼만한 건 아니었다.
시장 끝으로 가니 학교가 있었다.
혹시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이 있나 싶어 기웃거려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구경한다.
장구경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특기를 살려 목표를 재설정하기로 한다.
그냥 뒹굴거리자.
아마도 이 호텔의 침대가 앞으로 미얀마 여행 중에 쓸 침대 중 가장 깨끗하고 편한 침대일 것이다.
그러니 빈둥거리자.
그렇게 목표를 정했다.
우선 호텔 수영장으로 향한다.
동네 목욕탕의 온탕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호텔 수영장엔 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무 옆 그늘진 자리를 차지한 썬베드에 선글라스를 끼고 누웠다.
조금은 휴양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있으니 옆자리에도 사람들이 한둘씩 자리 잡는다.
나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목에 두드러기가 살짝 난 상태라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그늘에 들어와 있었지만 서양인들은 역시 나랑 제일 반대쪽 햇빛이 강한 자리로 간다.
그렇게 다들 잘 쉬는 가운데에서 내가 제일 푹 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그늘이 점점 없어져 결국 햇빛을 견딜 수 없게 됐다.
방에 올라가 조금 더 빈둥거리다 배가 고파서 동네 탐험에 나선다.
시장과 반대편에 있는 여행자거리로 향했다.
차가 다니는 큰길로 갈 수도 있지만 나는 동네 뒷길로 돌아갔다.
호텔 앞에서 뒤로 왔을 뿐인데 말이 풀을 뜯고 동네 개들이 낮잠을 자고 있다.
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에선 야외수업을 하고 있었다.
어떤 수업을 하는지 궁금해서 담장 밖에서 살짝 들여다봤다.
잠깐 멈춰 서있었더니 나를 발견한 아이들이 수군거리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낯선 외국인을 보며 자기들끼리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지가 상상됐다.
순간 여고 앞 바바리맨이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나도 손을 흔들어 답을 해주고 담장을 따라갔다.
학교 안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담장에서 최대한 높이 기웃거려본다.
수업시간에 몰래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밖에 나갔던 남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뛰어서 들어간다.
뛰어가면서 자꾸 나를 흘끔 걸더니 결국 넘어진다.
아이들에겐 내가 도망쳐야 할 낯선 존재였나 보다.
넘어진 아이에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길을 가다 보니 쟁반을 이고 다니며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걸어가면서 쉴 새 없이 소리친다.
'메밀묵 사려~'라고 외치는 소리 같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밍글라바'라고 미얀마 인사를 건네니 다시 밍글라바라고 답해주신다.
계속 가다 보니 여행자 거리가 나왔다.
이 거리에는 파고다 이외 바간의 유일한 관광지인 다나카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규모가 작고 입장료도 없고 관리인도 없었다.
무엇보다 관람객이 없었다.
미얀마의 전통 화장품인 다나카 전문 박물관인데 사진에 찍힌 부분이 거의 다인 작은 건물이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돌아보고 나왔다.
박물관을 나와서도 딱히 갈 곳이 없어서 마음 내키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행자들의 빨래를 해주는 세탁소가 있었다.
그 앞에는 세탁소 가족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엄마와 함께 나와 있었는데 다나카를 바른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더니 모두 웃으며 받아준다.
아이의 사진을 찍고 싶은데 혹시 무례한 일이 아닐지 고민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있다.
바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인화할 수 있는 포켓포토!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작은 폴라로이드사진 정도 크기로 사진을 인화하는 기계다.
나에겐 미얀마가 관광지지만 그들에겐 일상인데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건 실례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돈을 줄 수도 없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사진을 선물한다.
사진이란 건 조금 특별한 물건이라 물질보단 정신에 가깝다.
나와 그들이 자연스럽게 똑같이 생긴 추억을 나눌 방법이기도 하다.
우선 아이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허락을 받았다.
오랜만에 쓰는 기계를 만져 사진을 한 장 뽑았고 아이 엄마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보더니 엄마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할머니도 사진을 굉장히 신기하게 봤다.
어쩌면 이 아이의 첫 번째 사진을 내가 인화해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집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내 사진이 소문 난다.
할머니는 옆에서 놀고 있던 여자아이를 데려와 무어라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아이도 사진을 한 장 찍어줄 수 있겠냐는 말 같았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한 뒤 사진을 찍고 인화가 되길 기다리고 있으니 지켜보던 아저씨가 의자를 하나 갖다 주고 앉으라고 한다.
땀 흘리는 사람을 챙겨주는 넉넉한 인심이 고마워서 바간 여행 첫날 사람들에게 느꼈던 실망감이 모두 날아갔다.
세탁소 가족들과 사진 선물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계속 다른 골목을 걸었고,
나에게 먼저 인사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진을 선물했다.
그때마다 관광용 상품 웃음이 아닌 그들의 진짜 미소를 봤다.
그들 덕분에 바간에서 느낀 여행자에게 무례했던 태도들을 잊고 바간을 떠날 수 있었다.
골목을 지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나를 보더니 태워주겠다고 한 청년,
나를 보고 수군거리더니 따라와서 돈을 달라고 하던 교복 입은 3명의 여자아이,
나에게 미얀마어로 욕하는 어린 동생의 입을 틀어막는 7~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그중 내가 먼저 건넨 인사를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나를 손가락질하던 동네 아이들도 내가 인사를 하면 '밍글라바'라고 답해줬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순간엔 내가 관광객이 아닌 손님이란 태도를 밝혀야 한다.
혼자 다니는 20대 여자 여행자는 장사꾼들에게 가장 만만한 타겟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여행 중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특히 갓 성인이 된 스무 살 때는 길을 걸어가면 사이비 종교인들이 같은 장소에서 매일 나에게 다가왔고, 고속터미널에 앉아 있으면 차비를 빌려달라고 아저씨들이 다가오기 일수였다.
그런 일들을 피해 가고 무시하기 위해선 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표정을 배워야 했다.
갑자기 손목을 잡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말 한마디 없이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다 보니 낯선 사람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게 하는 방법은 점점 잊었다.
여행에서만큼은 그런 건 다 잊고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만만한 여자 여행자에게 밍글라바라고 먼저 인사해주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사실 장사꾼이 호객하고 비싼 값을 받으려 하는 게 무슨 죄일까.
다만 나는 그들의 일상에 다가가고 싶어서 마음을 열고 있는데 그들은 내게 열린 것이 지갑뿐이라고 생각하는 느낌을 받아 조금 울컥했다.
그래서 내 호의에 친절로 답해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바간을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할 수 있는 건 수천 개의 사원 때문이 아니라 사원 옆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준 어느 가족의 미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