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11
아이가 학교를 관둔 지 며칠 지난 아침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아이와 함께 간 동네 빵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갑자기 물었다.
“어? 오 늘 왜 학교 안 갔어?”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학교 밖 세상으로부터 첫 질문을 받은 것이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준규는 주저 없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저 홈 스쿨링해요. 학교 다니지 않거든요.”
잠시 잠깐이었지만, 아주머니의 반응이 제발 긍정적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주머니의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어머 좋겠다. 너 부럽다 얘~. 너희 엄마, 엄청 멋진 사람이구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그 아주머니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왜냐하면 홈스쿨링에 대해 세상으로부터 받는 첫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기회였고, 긍정적인 외부 반응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하지 못하고 받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이왕이면 첫 반응이 긍정적이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었나 보다.
그 이후 그런 질문들을 숱하게 받았고, 아이는 학교 대신 집에서 공부한다며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준규: 엄마, 내가 문제아예요?
엄마: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준규: 그냥요. 책에서 본 말인데 궁금해서요.
엄마: 누가 준규한테 속상한 말 했구나.
준규: (한참을 망설이더니) 며칠 전 ○○고등학교 운동장에 공을 들고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너 어느 학교 몇 학년이야?” 물으시기에 “5학년이고 학교는 안 다녀요.”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살짝 놀라시더니 갑자기 “너 그렇게 학교 안 다니고 부모 속 썩이면 나중에 커서 거지 된다.” 이러시더라고 요. 그래서 책에서 봤던 문제아라는 말이 궁금해졌어요.
엄마: 에고 그랬구나. 속상했겠네. 그런데 준규야, 엄마는 준규를 문제아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엄마가 준규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한 적이 훨씬 많아. 그리고 누군가 네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할 수 도 있어. 하지만 어른이라고 다 현명하고 맞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니야.
홈스쿨링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아이는 누군가
“오늘 학교 왜 안 갔 어?”
라고 물으면 너무나도 당당하게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가끔은 궁금해하는 것 같으면 묻지 않아도 먼저 가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아이는 다르게 대답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나 그 엄마들이 물을 때면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들께서 물어보시면
“오늘 사정이 있어서 학교 안 갔어요.”
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자기를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리고 신기해 하며 동물원의 사자처럼 자기를 이리저리 뜯어본다고 이야기했다. 더러는
“야, 쟤 학교 안다닌대.”
라며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들의 반응은 그리 기분 나쁘거나 황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반면 학부모들은 갑자기 폭풍 같은 질문을 퍼붓는다고 했다.
“너 그 럼 학원 어디 다녀? "
"지도 선생님은 누구야? 어디 살아? "
"무슨 책 많이 봐?”
그래도 이런 질문들은 그나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이 부담스러워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말도 안되는 책 제목들을 마구 댄다고 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드래곤 라자 시리즈 12345678910권, 헌터헌터, 드래곤볼, 좀비백과사전…….”
그렇게 부모님들이 좋아하지 않을 법한 책 제목들을 속사포 쏘듯 쉴 틈 없이 말하면 질문이 멈춘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준규가 홈스쿨링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갑자기 혀를 쯧쯧 차시며
“너 공부 안 하고 학교 안 다니면 이 할머니처럼 평생 고생하고 산다. 그러니 엄마 말 잘 들어.”
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럴 때 마다 준규는 너무 짜증나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날만 학교에 안 간 것처럼 둘러댄다고 했다.
하루는 아침에 강아지 곰곰이를 데리고 산책하며 집 근처 ○○초등 학교 교문 앞을 지나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초등학교 등교 지도를 하고 계시던 보안관 아저씨가
“너 왜 학교 안 가 고 빈둥거리냐!”
하시기 에 순간 어떤 버전으로 대답할지 고민하며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학부모가 다가오더니
“혹시, 너 <영재발굴단> 에 로봇 영재로 나온 그 친구 아니니?”
하더란다. 본인을 알아봐준 아주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하자
“아저씨, 얘 에도 나온 똑똑한 친구예요. 다 이유가 있어서 학교 안 다 니는 거니까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난처한 상황에 구원투수 같았던 그 아주머니 이야기를 전하며 준규가 웃었다.
이렇게 아이 스스로 질문자의 나이별로 다른 대처법이 생길 정도이니 나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상황마다 내가 따라다니며 아이를 보호해줄 수도 없고, 이것이 어쩌면 이 아이가 겪어야 할 성장통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차피 겪어야 한다면 조금은 덜 위축되고, 더 당당하게 상황을 받아들였 으면 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일단은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왕따를 당했나 등의 상상력이 동원되곤 한다. 요즘은 그나마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대중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관용이 인색한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초등학생 때부터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인생 선배로서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인생을 사는 것이 물론 쉬운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인생의 패배자 같은 기분을 겪어야 하는 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비합리적인 문화인 것 같다.
창의성,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환영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떻게 똑같은 교육 방식으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가 길러질 수 있겠는가?
개개인이 가진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으로 인해 사회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