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12
누군가에게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다들 어떻게 학교를 관둘 수 있 었느냐,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서 대단하다는 반응들을 보인다.
물론 학교에 맡겨둘 때보다 신경이 더 쓰이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 그 거대한 배에서 내리기 전 그리고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주저했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작은 보트를 타고 나 홀로 바다를 항해하면 엄청나게 두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덜기 위해 2년여에 걸친 고민의 시간도 필요했다. 큰 배에서 내려 작은 보트를 탔기에 혼자 키도 잡아야 하고, 날씨도 체크해야 하고, 거센 풍랑에 쉽게 뒤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도 써야 했다.
하지만 신기했던 것은 막상 배에서 내리고 나니 큰 배에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타고 있는 이 작은 보트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좋은 목적지로 끌고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마당에 앉아 아이와 책을 읽고 있 는데 문득
‘이렇게 마음이 편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우리는 큰 배에 같이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부터 멀어져, 이 삶이라는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더 가까이에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아이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져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까지 3년 반이나 남은 상태였고, 그 시간 동안 학교에서 하는 공부 정도만 하면서 충분히 놀 수 있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꾸 늦잠을 자는 버릇이 생겨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자, 아이 아빠가 말했 다.
누릴 수 있을 때 그냥 행복하게 누리자고.
그 말이 맞았다. 지금 누릴 수 있는 이 여유와 평화를 만끽하는 편이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학습에 대한 욕심을 살짝 버리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울 수 있게 시간들을 채워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 속에서 책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면, 내가 먼저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아이와 나는 매일 같은 일과로 1년을 살 만큼 그리 성실하지 못하다.
그냥 조금씩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준규가 그런 자유로운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준규는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하는 공부를 정해진 시간에 일찌감치 끝마쳤지만, 또 어떤 날은 눈을 떠보면 책상에서 뭔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이 나서 시간가는 줄 모르 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그날 일과를 빨리 하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시간도 아이에겐 놀이이자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해야 하는 일과 자유 시간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예민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살피며 완급 조절을 하고, 절충안을 찾기 위해 설득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아이와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또는 1년, 3년의 시간에 대한 방향을 세우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상의할 만한 곳을 끊임없이 찾아야 했고, 나에게 주어진 무게로 인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아이 아빠나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불안감을 덜어야만 했다.
그렇게 뭔가 이 아이만의 방식으로 아이가 원하는 곳까지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 길 위에도 드문드문 앞서간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때론 그들에게서 소중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며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Tips. 처음 계획대로 아이의 학습 속도 맞추기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나태해지거나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처음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적이 수없이 많다. 아마 그 순간들마다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홈스쿨링을 포기했거나 아이와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꼭 홈스쿨링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숙제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아이와의 갈등이 빚어지는 일은 다반사이다.
결국은 아이 스스로 학습에 욕심이 나도록 현명하게 유도하거나 동기가 생기도록 도와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어디까지나 아이의 인생이니 내가 조급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기 때문이다.
아침 기상 시간이 너무 나태해진다 싶으면 가족 모두 아침 운동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날씨 탓, 수면 부족을 탓하다 포기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일정한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다가 선택한 것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아이는 꽤 오래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양보가 안 되는 부분이었지만, 아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강아지를 들인 지 2년 정도 되었다. 이후 남편과 준규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강아지 곰곰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한 후 신문을 보는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학습에 있어서 나는 원칙적인 편은 아니고 오히려 살짝 기분파 선생님인 듯 싶다. 매일 똑같은 일상은 나에게도 힘들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는 주제가 있다면 매일매일 하는 학습은 2순위가 된다. 그 주제가 설령 종이접기라도 매일 해야 하는 과제를 미룰 수 있도록 유연하게 허용해주는 편이다. 다만 미루는 횟수는 세 번이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슬쩍 넘어가보려 하거나 꾀를 부릴 때는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하기 싫더라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며 해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매일 해야 하는 일과들이 쌓이고 쌓여서 발휘하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대해서 말이다.
간절히 하고 싶은 활동이 있더라도, 그것을 참고 약속된 학습을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그 학습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을 미룰 것인지 조금이라도 해놓고 개인 활동을 할 것인지 정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습관처럼 반복된다면 미룬 것들을 일정 기간 내에 다 하도록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학습은 꾸준한 인내심도 중요하지만
자발성이 비롯될 때 집중력이 올라가고 효율성도 높아진다
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홈스쿨링을 하며 학습적인 면에서 엄마가 어떻게 해줄 때 가장 좋았냐고 물었더니, 다른 재미있는 활동에 빠져 계속 미룬 학습들을 한꺼번에 하느라 힘들 때
엄마가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하면 돼. 혹은 내일부터 잘하면 되지.’라고 따뜻한 어조로 이야기해줄 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나는 열세 살 준규를 대할 때 늘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이 아이는 여덟 살이라 고. 아직 어리다고.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진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하루하루 성장해가고 있다.
여담으로,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접던 종이접기는 결국 아이를 14살에 <게임종이접기> 라는 책을 발간하게까지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