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규네 홈스쿨 Jan 22. 2020

아이들에게 질문이란 무엇일까요?

질문하는 힘,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매일 아침 학교 가는 아이 등 뒤에 대고 말했었습니다. 

"학교 가서 선생님께 질문 많이 하고 와~~"라고요. 

제 어릴 적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한 사람 돼야지"라는 내 엄마의 메시지에 대한 반론의 제스처이자 내 아이가 수동적이기보다는 좀 더 그릇이 큰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제 바람이 담긴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물색없는 엄마였습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질문이 허용되기는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한 엄마였던 거지요.


아이들은 태어나 수많은 질문들을 합니다. 민감기(마리아 몬테소리) 때 아이들은 작은 동식물들을 마주하며 대자연에 매료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자연과 주변 사물을 향해 던지는 아이들의 질문은 그렇게 심오할 수가 없습니다. 한 명의 예술가 같다가, 천재 같기도 하고, 과학자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심지어 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민감기를 지나고, 학교에 들어가고, 알아가는 것의 즐거움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아이 모습을 손 놓고 바라봐야만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교육환경 때문인가? 엄마인 내가 대답을 잘 못해줘서 그런가? 내가 사고를 잘 확장시켜주지 못해서 그 호기심들이 다 사라진 건가?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당시 아이들이 하는 질문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비교적 호감 가는 질문들이 대부분입니다. 

"개미는 왜 까매요?"

"물은 어디서 흐르는 거예요?"

"눈은 왜 내려요?"

와 같이 호기심에서 비롯된 아주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나 과학적이고, 호기심 가득하고, 기특한 질문이지만 일상에서 그 질문 폭격을 당해내야 하는 엄마들은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또는 그 질문들을 다 감당하지 못해 내 아이를 평범한 아이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감해주는 것! 



"그러게~ 개미가 왜 까맣지?"

"물이 어디서 흐르는 거지? 진짜?"

"눈이 내리니 예쁘다 그렇지, 근데 왜 내리지?" 

라고 궁금해하는 마음만 읽어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질문을 통해 그다음 질문을 이어 나가고, 때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과정을 스스로 겪겠지요. 그저 같은 질문이 반복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려가 궁금함을 해소하는 방법 정도를 선보여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일 것입니다. 엄마가 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고, '가만히 좀 있어봐', '조용히 해', '넌 뭘 맨날 묻니?'와 같이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저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호기심이 묵살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들어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질문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아이들의 질문은 선생님들을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때로는 선생님 눈에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생뚱맞은 질문으로 수업 방해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질문의 배경이 읽히기도 전에 그저 수업을 방해한다는 명목으로 눈치를 받거나 주의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위의 질문은 그나마 진지한 호기심의 형태를 띠고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궁금함이 기저에 깔렸다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포함된 질문이라 묵살당하기 가장 쉬운 질문들입니다. 투정이나 불평처럼 받아들여지기 십상이겠지요.


"유치원 가기 싫어요"

"엄마,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 거예요?" 

"엄마, 유치원 안 가면 안 돼요?"

"유치원 가면 자꾸 눈물이 나요"

"엄마, 학교만 가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요"

라고요.

어른 입장에서 이런 류의 말들은 질문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투정이나 부적응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런 투정에 공감이라도 해줬다가 골치 아픈 상황이 펼쳐질 게 뻔하니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다른 것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또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봄쯤 학교 갈 준비를 하다 말고

"엄마~ 학교는 왜 다니는 거예요?"라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나조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일 년이 넘도록 대안교육, 해외 교육제도, 홈스쿨링 등을 알아보면서도 아이에게 내색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을 공감했다가 아이에게 '학교 안 다녀도 되나?'라는 생각의 틈을 주게 될까 봐, 그 불안감 때문에 그 힘든 마음들을 차마 읽어주지 못했었습니다. 혹시나 공감했다가 감당 안 되는 상황들을 털어놓는 것은 아닐까 무서워서 애써 공감을 미루고만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같이 두려워서...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질문은 이 시대에 너무나 필요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니 나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의식하지 않으면 강요당하는 것조차 모르는 것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라는 점에서 환영받아야 하는 질문일테지요. 그 질문 하나가 시작이 되어 큰 변화를, 큰 발전을 이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한때 유행했던 광고처럼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어른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존 틀에 대해 아이들의 시선으로 던질 수 있는 신선한 사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다, 유치원 안 가면 안 되냐 하는 등의 반응들도 결국은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이 사회를 향해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준규네 홈스쿨> 저자 강연을 가서 현장에서 만나는 엄마들 가운데 홈스쿨링을 고민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 중,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해서 애를 먹거나 학교를 거부하는 상황에 이미 엄마는 지칠 대로 지쳐있는 경우들을 보게 됩닌다. 그럴 때 저는 꼭 이 말씀을 드립니다.

'아이들이 질문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런데 그 질문을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리거나 부모 의견만 관철시키려 하면 결국엔 그런 질문조차도 하지 않고, 부모와의 소통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요. 그러니 부디 아이의 절규와도 같은 질문에 좀 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셨으면 한다고요. 그렇게 하나씩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아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보이더라고, 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팔짱 끼고 '남들 다 잘 다니는데, 너는 왜?'라는 마음이 아니라 

'유치원 가기 싫어? 학교에서 힘들었구나?'라고요. 그렇게 가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질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아이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의 느릿느릿한 말들을 귀담아들으며 부모와 의견을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 애쓰는 과정을 겪은 아이와 그저 아이의 그런 표현들이 골치 아픈 투정으로만 가볍게 여겨지는 경험을 하며 길러진 아이와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 놓고, 요즘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다, 질문을 하지 못한다, 수동적이다 함부로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 무엇 하나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학교를 가야만 했던 아이들이 과연 자기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는 있기나 했을까 묻고 싶어 집니다.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자기 결정을 하고, 자기 시간을 책임지고, 자기 의사표현을 하는 것에서부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선이 만들어지고 자기 인생에 대한 주체성이 길러지며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말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