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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ul 23. 2024

하이디, 드디어 알프스에 가다.

여행 8일차_인터라켄 도착,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인터라켄으로 가는 날이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대가 큰 나라, 스위스로 간다. 딸내미가 내 감기증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짐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러가는 길에 감기약을 사기위해 약국에 들렀다. 약을 사야하는 것이니 정확한 설명을 해야할 것 같아 번역기를 이용했다. 그리고 간단한 질문은 영어로 했는데 약사가 before와 after를 헷갈릴 정도로 영어가 짧았다. 살짝 믿음이 안갔지만 아쉬운대로 목감기약과 기침약을 한개씩 샀다.



지하철역 안에 아이가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가 있었다. 기차역이 가까워서 좀 늦장을 부렸더니 시간여유가 별로 없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길의 방향을 헷갈릴 때도 있고 출입구를 못찾아 주변에서 한참 헤맬 때도 있어 무조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데, 아이가 마카롱에 꽂혀 또 시간을 지체하려고 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가게를 그냥 지나쳤더니 아이가 또 샐쭉했다. 모르는 척 했다.



파리 리옹역까지는 지하철로 잘 도착했는데 어디가 기차역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창고같은 곳이 나왔다. 뭔가 이상해서 다시 위로 올라와 헤매고 있는데 출발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아이는 옆에서 재촉하고, 초조해져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곧 아이가 블로그들을 찾아보고 제대로 길을 찾아서 기차역 대합실에 무사히 도착했다. 새삼 우리나라 블로거들의 친절하고 부지런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니터에 표시된대로 Hall 3으로 갔는데 인터라켄 기차를 타는 곳이 아니란다. 출발 5분전, 지나가던 경찰에게 기차표를 보여주며 물었는데 경찰이 영어를 못해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가 물어본 경찰이 타는 곳을 알려줘서 출발 2분전에 기차안으로 골인!  간신히 파리를 떠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기차를 놓치기도 하고 그런게 다 추억이 되는 거라고 거들먹거렸는데. 진짜 그런 상황이 되고보니 그야말로 똥줄이 탔다. 지난 날의 철없던 내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파리를 떠나면서 파리에서의 지난 4일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처음에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답게 여유롭고 우아한 느낌보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인상이 더 강했다. 마치 도시 전체가 붕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떠나면서 생각하니 어쩌면 내가 너무 파리의 겉모습만 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무질서가 떠날때쯤 되니 자유로움으로 느껴지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들 안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내 이런 느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더 파리에 와야할 것 같다.



인터라켄으로 가려면 바젤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파리 기차가 연착되는 경우가 많다고해서 다음 열차는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었다. 리옹역에서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바로 이어지는 기차는 포기하고 여유있게 그 다음 기차표를 끊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카드결재가 되지 않았다. 자동발권기에서 몇번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카운터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역시 결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비상용으로 한개 더 챙겨간 신용카드로 결재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스위스 프랑을 충전해놓지 않아 잔액부족으로 결재가 안되었던 것이었다. 여러나라를 옮겨다니다보니 화폐단위가 헷갈려 스위스도 유로를 쓰는 것으로 잠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듣던대로 환상적이었다. 넓고 푸른 풀밭에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는 낮은 집들은 그림엽서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인터라켄에 거의 도착할 때 쯤에는 에메랄드 빛의 호수까지 펼쳐지며 비현실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인터라켄 웨스트 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장을 보았다.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스위스에서는 외식 대신에 한국에서 싸온 햇반을 주로 먹을 계획이었다. 그 첫번째 메뉴는 삼겹살! 많은 스위스 여행 블로그에서도 스위스 음식에 대한 얘기보다 한국음식을 직접 해먹었다는 얘기들이 훨씬 많아 나도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인터라켄에 한국 여행객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슈퍼에서 파는 삼겹살도 우리나라에서처럼 먹기좋게 적당한 두께로 썰어져 담겨있었다. 깻잎이 없는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삼겹살을 싸먹을 상추랑 비슷하게 생긴 야채와 오이도 샀다.



무거운 캐리어에 장 본 것까지 들고 20분 가량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버스를 탈까도 했지만 몇 정류장 타지도 않는데 버스비가 무려 14000원 정도나 하니 도저히 억울해서 탈 수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빨래를 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앉지도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아이가 "엄마, 신나보이네"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집안일이었는데 오랜만에 넓은 주방과 세탁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기운이 솟으면서 저절로 몸이 움직여졌다. 뼈 속 깊이 새겨진 주부근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저녁을 먹는데 마음같아서는 돼지 한마리에 밥 한솥은 먹을 수 있을거 같았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는 햇볕이 쨍쨍하더니 저녁 8시가 넘어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사방으로 보였던 멋진 산들과 그림같은 동네 모습을 제대로 다시 보고 싶어서 산책을 나갔다. 그보다 내가 스위스에 왔다는 감격스러운 기분에 그냥 방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빗속에 동네를 걷기만 하는데도 마냥 좋았다.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공기마저도 달콤했다. 눈 앞에 알프스산이 보이는 게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게 너무 좋았다. 너무 행복했다.


알프스야~ 드디어 하이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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