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유독 부부사이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 가깝게는 언니와 동생부터 친구들, 심지어 블로그 이웃들까지.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남편 또는 아내와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건 언제나 흐뭇한 일이지만, 가끔은 사이좋은 남의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데면데면한 우리 부부가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가 생각하는 부부의 의미가 나와는 다르니까. 어쩌면 우리도 그들처럼 사이좋은 부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부부관계에서 '알콩달콩'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남편은 그냥 '부부'이면 된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28년째 같이 살고 있고, 우리 사이에는 자식도 둘이나 있고, 남편은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고, 나는 식구들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있고, 특별히 큰소리를 내며 서로 다투는 일도 없으니 남편의 기준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이좋은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이웃 블로거 중에 가족에 대한 글을 주로 많이 쓰는, 나와 동년배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남편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자상하고 따뜻하다. 그녀 역시도 남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넘친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글을 읽으면 내마음까지 따뜻해진다.
그런데 요즘은 그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의 글을 읽고나면 마음이 뽀족해지면서 공연히 심통이 올라왔다. '이 사람은 남편이랑 늘 좋기만 한가?", '사이좋은 부부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거야?', '이렇게 사는 부부도 있는데 우리는 왜이래?'... 그의 글을 읽고나면 항상 나와 남편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그집 남자와는 너무 다른 내 남편을 원망하게 되고, 그런 남자를 고른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되고, 이 생에서는 텄다고 체념하게되었다. 몹시 부러웠다. 약이 올랐다. 이혼하고 싶어졌다.
'이혼'을 소재로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들은 어떤 이유로, 또 어느 정도로 심각해서 이혼을 하는지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다. 가정폭력, 외도, 무능력한 가장, 사치, 알코올 중독, 고부갈등... 그 원인이 무척 다양하고 심각했다. 성격차이로 갈등을 겪고있는 부부들의 사연에서는 간혹 우리 부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드는 생각은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닌데...'였다.
못마땅하던 남편도 TV 속의 문제 남편들에 비하면 아주 훌륭하게 느껴졌다. 술을많이 마시기는 하지만 주사는 없고, 바람을 피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한테 들킨 적은 없고, 아내에게 손찌검을 할만큼 막돼먹지도않았으니 딱히 이혼을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가끔 설겆이도 해주고, 내가 없어도 알아서 챙겨먹고, 내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지도 않는남편이니 '알콩달콩'만 포기한다면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이혼은 안되겠다.
자고 있는 남편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많이 늙었다. 오늘은 측은하다.아무래도 알콩달콩은다음 생으로 미뤄야할까보다. 이번 생은 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