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이런 종류의 질문은 주로 내가 남편에게 해왔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으로 오만상을 지었었는데.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나는 올라간 적이 없어서 내려올 일이 없거든!"
"어허, 이 사람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우리 나이가 이제 인생을 차츰 정리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하는 말이지."
남편이 무엇을 물어보는지 알면서도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이 낯설고 어색해서 농담으로 대꾸하니 남편은 다시 진지하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내 대답이 꼭 농담만은 아니었다. 꿈 많던 젊은 시절을 한사람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만 다 보내고 나서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내 인생이 너무 보잘 것 없게 느껴져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때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랬더라면... 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던 때가 있었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이뤄놓은게 없는 것 같은 내 인생이 너무나 아까워 남편과 아이들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딱히 사춘기라고 떠올릴만한 시기가 없었던 나에게는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의 사춘기, 아니 남들이 말하는 갱년기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기를 지나 인생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이제 겨우 다시 평정심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 인생 별 거 없다!
살면서 남편은 마음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늦되는 사람이었다. 마치 당첨번호는 맞는데 회차가 다른 로또같다고나 할까. 남들보다 느끼는 감정이 한발짝 늦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겨우 마음의 평화를 찾았는데, 남편은 이제서 시작하려나 보다.
내가 들어올린 술잔에 마지못해 잔을 부딪치면서도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기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예전의 내가 남편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지금의 평화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이제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 역시나 우리는 영원히 맞지 않는 로또부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