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달팽이, 그리고 꼴찌 4인방

by 서정희

오랜만에 식물을 샀다.

남편의 전시 오픈식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긴장도 풀려버렸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식물을 사러 가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제법 큰 규모의 화원이 있다. 대충 머리만 감고 일단 나갔다.


귀엽게 생긴 파키라를 하나 구매했다.

가는 길에 하나 다짐한 게 있었다. '3000원짜리 모종은 사지 말자!'


기껏해야 몇 천 원 차이겠지만,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하고 싶었다. 고르고 고른 끝에 구매한 8000원짜리 파키라를 들고 남편이 작업하고 있는 공방으로 갔다. 남편은 돌발 상황을 어려워하는 나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갑자기 식물을 들고 찾아온 나를 반겨주기보다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냥"


대충 상황을 얼버무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식물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식물을 고르고 키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내가 의미가 되어 준다는 것이 짜릿하다.


남편의 작가 활동을 누구보다 응원한다. 아마 본인보다 내가 더 그의 성공을 바라고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체를 생각하면 괜히 초라해지는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요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더 그런 것 같다. 작업도 관두고 직업도 없는 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 보였다. 재정비하는 시간이라며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지만, 어쩐지 씁쓸했다.


대학원 시절, 내 밥시간을 함께해 줬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생각났다.

극 중 ‘권오중’이라는 인물은 아주 어른스럽고 똑똑하진 않지만, 순수하고 잔정이 많은 성격이다. 오중이 주변 성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문학 작품 얘기에 끼지 못했고, 영어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농구도 잘하지 못했다. 그런 오중은 사촌동생에게 과외를 받으러 오는 ‘꼴찌 4인방’에게 피자를 사준다. “I Like Pizza”를 외치며 꼴찌 4인방 앞에서 영어 실력을 잔뜩 뽐내고, 규칙을 무시한 1:4 농구를 하며 자신의 운동신경을 과시한다. 꼴찌 4인방은 오중을 멋있는 어른으로 바라봤고, 그들의 감탄에 오중은 이내 으쓱해진다.


나에게 식물과 달팽이라는 존재가 오중의 ‘꼴찌 4인방’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내 자존감을 채워주는, 내 결핍을 해소해 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내가 키우는 식물들과 달팽이, 내가 그들을 키우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도 나를 키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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