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by 서정희

며칠 전, 샤워하다 여기저기 다쳐서 흉터가 생긴 내 다리가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도 소모품이구나.

그래서인지 다친 발목도, 깨진 이도, 여전히 부어있는 무릎이 그러려니하게 느껴졌다. 덜 속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아이돌, 신화가 나오는 꿈을 꾸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너무 생생하고 마음이 들떠서 눈 뜨자마자 신화 뮤직비디오 몇 개를 봤다.

길몽이었나 보다.

범식오빠한테 좋은 일이 생겼다. 1차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내 일 보다 더 기뻤다. 진심으로.

재능 있고 성실하기 쉽지 않은데, 범식오빠는 성실한 재능인간이다.


엄마한테 자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짤막한 통화 속에서 도저히 자랑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돌 한 무더기가 터덕터덕 소나기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온몸이 속상함으로 젖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예전처럼 큰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의 할 일을 해야 했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했다.

설레고 흥분했던 마음이 금방 차분해지면서 나는 다시 중간을 찾게 되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예전처럼 술에 취해서 잠들지도 않았다.


나는 큰일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

감정에 치우친 선택과 행동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범식오빠는 최종 합격된 것이 아니기에 면접을 준비하며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엄마의 컨디션은 충분히 좋아질 기미가 보였고, 더 악화되기 전에 발견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의 행복은 내가 아닌 곳에서 시작된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늘 나보다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왔고 간절히 그들의 행복을 바라왔다.


다친 나보다 다친 나를 보살펴주는 남자친구를 걱정했고, 돈이 없어 쪼들리는 것보다 아쉽게 사는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께 죄송했다.

나는 항상 늘 그 자리에 있다. 비슷한 모습과 여전한 마음으로 그대로 있다.

좋은 일, 나쁜 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들일뿐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성장하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호들갑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뿐이다.





2021년, 2년 전 이맘때쯤 썼던 글이다.

작년 이맘때는 내가 어땠을까? 재작년엔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져 그때의 내가 뭘 하고 지냈는지 천천히 되짚어 봤다. 작년에는 가을에 있을 전시 준비로 바쁘게 지냈고, 재작년엔 지원 사업을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던 기억이 난다.


재작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었나 보다. 요즘엔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 금세 들떠버리고 만다. 좀 전에 병원을 다녀왔다. 선생님께 요즘 잠도 잘 자고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웃으며 진료실을 나온 게 무색할 정도로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작업도 미뤄놓고 집에 드러누워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바디워시로 빡빡 샤워하고, 촉감 좋은 잠옷을 입고 한숨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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