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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희 Aug 09. 2023

귀여운 남자

새끼발가락마저 귀여운 사람

비루했던 20대의 연애

  엄마, 아빠를 제외한 모든 것들 중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다.

 혼자 지낸 시간이 길었던 나에게 그는 부모님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런저런 사족을 빼고 얘기하자면, 귀엽다.

 물론 내 눈에 한정이겠지만, 귀여우면 끝난 거 아닌가?


 처음엔 둘 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지만, 왠지 마지막 남자친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이 남자를 만나고는 눈빛에 경계심이 없어지고, 매일 웃으며 지내는 덕분에 팔자주름과 없던 보조개가 생겼다. 그만큼 안정되고 행복해졌다는 뜻이다.



 20대엔 연애 자체가 재밌었다.

 사귀기 전 긴장감도 재밌고, 사귀고 나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도 즐거웠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과정에서는 인생의 쓴 맛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사람이 물론 좋았겠지만, 연애하는 내 모습이 예뻐 보여서 좋았다. 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연애를 했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충분히 알기 전에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쓸데없는 거짓말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밤 10시에 혼자 치킨에 맥주를 시켜 먹었는데 남자친구에게는 비밀로 한다던가?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얘기를 안 한다던가... 왜 그랬을까?


 그냥,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색하고 무서웠나 보다.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분들이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져갔고,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내 입장만을 고집했다. 나에게 고마웠다는 이도, 술이 잔뜩 취해 썅년이라고 욕한 이도 있었다.


 20대의 끝자락쯤, 엉망이었던 나의 연애 생활에 드디어 팔딱거리고 반짝거리는 존재가 생겼다.

 이 사람과 하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고, 이상하리만큼 편했다. 딱히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뿐이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솔직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남편을 너무 귀여워한다. 전생에 내 자식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거의 24시간 붙어있는데, 8년 동안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다. 가끔씩은 혹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가 아닌가? 랩틸리언이 변장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까지 좋을 수가 있을까?



 남편을 만난 이후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예전에 비해 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남편은 술 담배를 싫어하고 운동을 즐겨하는 건전한 사람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마시고 절제하지 못했던 술을 단번에 줄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둘 만의 회식을 한다. 아마 남편을 만난 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밌고, 담배보다 더 위안이 되는 존재가 있으니 요만큼의 아쉬움도 없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점잖은 척하느라 진이 빠진다. 속으로는 빨리 집에 가서 족발에 소맥 마시는 생각을 한다. 기운 쭉 빠지고 들어와도 남편과 함께 소맥 한잔, 그리고 부둥이 몇 분이면 금세 기운이 충전된다.   


 가끔씩 오줄 없어 보일 정도로 귀여워하는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남편을 주제로 글을 쓰기도 하고, 몰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실, 객관적으로는 남편의 하는 행동이나 얼굴이 썩 귀여운 편은 아니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그 또한 나에게만 보여주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나를 재수 없어하는 친구도 있었고, 부러워하는 동생도 있었다. 안 싸우고 재밌게 지내는 방법?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을 적절한 시기에 잘 만난 것이다.


 그리고, 얼굴 보면 화도 잘 안 난다. 귀여우니까!




너의 발이 좋다  

        

다른 사람이랑 살갗이 부딪히는 것도 버거워하는 나인데,

내 발을 만지기도 꺼려하는데 내가

너의 발을 만지고, 만지고 계속 어루만지고 싶다

     

발가락 하나하나,

그 발가락을 채우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벅차다

모든 존재가 나에게 느껴지는 듯하다     


젤리처럼 몽글한 너의 발을 질겅질겅 깨물고 싶다

꺼끌꺼끌한 너의 뒤꿈치조차 사랑스러우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안쪽으로 살짝 틀어진 새끼발가락과

두 갈래로 갈라진 새끼발톱이 내 마음을 설렘으로 흠뻑 적신다     


배 깔고 누워 이불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너의 발이 나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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