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기고 부족한 이상한 텃밭
입학과 졸업, 첫 아이의 탄생, 첫 해외여행, 지금의 제주 살이 까지. 나에게 처음은 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는데, 빵부스러기만큼의 두려움도 없이 100% 설렘으로 가득 찬 순간은 첫 수확의 날이었다. 고치지 못하는 미루는 병 때문에 모종 구입이 늦어졌다. 오일장 모종 가게 삼촌은 ‘너무 끝물이라...열매를 맺긴할텐데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라며 구매한 모종을 봉투에 담아주셨다. 그동안 방치된 우리집 텃밭은 이미 벌레들의 소굴이 된 지 오래였고 부드러운 흙보다 주먹만한 돌덩이가 박혀있는 돌밭이었다.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보다 망하는 조건을 갖고 있어서 인지 수확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오히려 첫 시작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다.
모종을 심은 지 한 달 반쯤 지났을까. 고추 모종에 새끼손톱만 한 아기 고추가 매달렸다. 오이넝쿨에는 뾰족한 가시 돋친 새끼손가락만 한 오이도 열렸다. 이 척박한 조건 속에서 열매를 맺다니 기특함에 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 달이 더 지나니 먹을 수 있을 만큼 열매들이 자라 땅에 닿을 정도로 줄기가 늘어지게 되었다. 지금이야! 아이들과 채반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뚱뚱하고 둥글게 말린 오이, 구멍 뚫린 적겨자 세 잎, 검지 손가락 길이만 한 고추 열 개. 방울토마토 한 알. 상추 여섯 잎. 바질 열 잎. 마트에서 봤던 한 봉지에 담긴 채소에 비하면 훨씬 부족한 양이었다. 사 먹는 채소들처럼 반질반질하고 때깔 좋은 채소들도 아니었다. 벌레 먹은 상추 잎을 신중하게 뜯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이렇게 세 달 동안 아주 정성껏 기른 파치를 수확했다. (*파치 : 흠이 나서 못쓰는 것)
마트에서 사는 한 봉지보다 훨씬 부족한 양이었지만 4인 가족의 한 끼 식사 재료로는 충분했다. 못생기고 벌레 먹은 모양은 수분 가득하고 단단한 채소들의 맛에 가려졌다.
엄마, 이상하게 우리 텃밭에서 난 것들은 다 맛있어요.
반찬 속에 아무리 곱게 갈아 숨겨도 채소 내음을 찾아내는 장금이 미각의 소유자 첫째가 먼저 반응했다. 아이 말대로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이 우리 집 텃밭에서 일어났다. 새끼손가락만한 열매가 자라 오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아이들의 채소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줄여주는 계기가 된걸까. 마치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한 사냥개와는 물고빨고가 되지만 길에서 만난 큰 개 앞에선 멈칫하게 되는 것처럼. 텃밭이 생기고 난 후 아이들은 오이는 물론, 케일, 방울토마토, 바질, 애플민트까지 섭렵했다. 이러니 수확의 날이 내게 설렘 100%가 아닐 수가. 우리집 마당 텃밭엔 오늘도 내일도 다른 100%의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