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순간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둔 일곱 살 아이가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든 가족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한글 학습지를 시켜보자고 권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발레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일을 잘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비용을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학습지를 제안했던 사람들은 이런 나의 결정에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랬다. 지금 떠올려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던 ‘퇴사 후 집 팔아 떠난 장기 배낭여행’은 당시 주변인들의 모든 근심거리가 되었다. 모두의 걱정대로 퇴사 후 집을 팔고 떠난 장기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직장이 없고, 집이 없고, 모은 돈이 줄어들어 있었다. 통장에 남아있는 돈을 바득바득 모아 시장 위 언덕배기에 위치한 욕실 세면대가 없는 집을 구했다. 이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첫 달 월급이 나올 때까지만 버티면 되었다. 언덕 위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나쳐야 했던 시장은 상추 한 바구니를 살 돈이 없었던 나의 가난을 매일매일 알려주었지만 다시 돌아갈 집이 있고 한 달 후 상추 두 바구니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는 길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을 위해 그때가 아니면 다시 하지 못했을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쌈 채소류의 씨앗들은 보통 100 립에서 500 립의 씨앗이 한 봉투에 담겨 있다. 500 립이 들어있는 상추씨앗을 집어 들었다. 천 원짜리 씨앗 한 봉지면 500개의 상추 모종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세상에, 십 년 전 나를 가난의 기억으로 몰아넣었던 그 상추 한 바구니가 천 원이면 해결되고도 남는 것이었다니. 상토를 가득 채운 텃밭에 손가락 한마디 깊이의 홈을 파고 상추 씨앗을 3개씩 넣었다. 일주일이 지나 씨앗보다 조금 큰 떡잎이 나왔고 한 달이 지나자 손바닥만 하게 자라났다. 조금 더 크면 먹기 위해 기다렸던 한 달 사이 누군가 잎을 조각조각 베어 먹고 있었지만 내겐 아직 470 립의 씨앗이 봉투에 남아있었으니 그것이 누가 되었든 함께 나눠먹는 것은 큰일이 아니었다.
씨앗을 뿌린 지 두 달이 지나 나는 볼품없고 흙이 잔뜩 묻은 상추를 스텐 볼 가득 채웠다. 이렇게 먹고도 일주일이면 또 다른 새 잎이 자라났다. 이후로도 상추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스텐볼을 계속 채워주었다. 마르지 않는 곳간을 가진 나는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신이 났다. 불현듯 여기저기 구멍이 송송 뚫린 상추 한 바구니가 더 크고 상처 없는 상추 한 바구니보다 부자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 실소가 터졌다. 지금도 나로 인해 속이 타는 주변인들은 어처구니없어하겠지만,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때도 지금도 나의 마음을 따라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