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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Sep 24. 2022

천연화장품을 사용하며 얻은 병

성분을 알게 되다. 

성분을 알게 된다는 것. 



미리 캔버스 작업물 @해피쏨



오늘도 머리가 찌릿하다. 양쪽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통증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나면 정확히 이틀 뒤에 세찬 비가 내리고 만다. 내리는 빗줄기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통증의 강도는 ‘와 이번엔 진짜 큰 태풍 인가 봐’ ‘그냥 흩뿌릴 것 같은데?’ ‘비는 안 오고 그냥 흐리겠네.’ 정도의 꽤 정확한 몸 피셜 예보를 내놓을 정도다. 기상청의 날씨예보보다 정확한 몸이라 평소에 통증과 관련된 약을 자주 찾게 되는데 이런 배경엔 ‘고통을 참는 것보단 약을 먹는 게 낫다’는 엄마의 가르침이 있었다. 엄마의 몸과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 고통의 늪을 이미 겪어본 엄마는 내가 통증에 불편함을 호소하자 ‘미련하게 참지 말고 약 먹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왠지 엄마가 어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서 엄마의 말을 군말 없이 따랐다.      



 유명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다녔던 언니네 가족은 약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몇 주에 한 번씩 맞춰야 하는 예방주사도 모두 건너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것이 선택의 기회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놀라웠다. 언니네 가족은 피를 보는 일이 아닌 이상은 병원을 가지 않았다. 물론 약국도 가지 않았다. 열이 나면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의 열을 내리고 보양식을 먹으며 몸을 회복했다. 치료보단 치유에 가까웠다. 신기하게도 언니네 가족은 그렇게 크게 아픈 적이 없었고 감기도 늘 가볍게 지나갔다. 약 없이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놀라움을 넘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근데 왜? 언제부터?라는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종합감기약이라고 부르는 약들에는 내게 필요한 하나의 고통을 줄여주는 성분뿐 아니라 모든 통증을 미리 없애주는 성분까지 들어있다고 했다. 항생제가 악성 세균만 죽이는 게 아니라 몸속의 좋은 면역 균까지 제거하는 것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회복력은 약에 의존하게 될수록 줄어들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니의 말을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동안 힘도 못써보고 죽어간 나의 면역세포들이 떠올라 억울해졌다. 하지만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 해보고 싶었던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나는 여전히 통증을 느낄 때면 누구보다 빠르게 약을 찾는다. 약을 먹지 않고 이 고통을 잠재울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리 캔버스 작업물 @해피쏨

 

천연화장품을 사용하기 전에는 가성비 좋은 화장품을 위주로 사용했다. 그중에  커버력이 좋다고 소문난 비비크림, 발색력이 좋은 립스틱 등의 기능성 제품들에 한해서는 고가의 제품을 사용하기도 했다.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고부터는 기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만들어 쓸 줄 아는 덕에 기성품을 사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분들에게 이 글을 빌려 실토하자면, 


‘제가 화장품을 사서 쓰지 않는 이유는
천연화장품을 사용하며 생긴 병 때문이에요.’    



하루에 못해도 두 번은 피부 속 깊이 흡수시키는 제품인 화장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생이다. 만드는 동안 화장품에 먼지 한 톨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용되는 모든 도구를 알코올로 소독하고 소독하고 또 소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병은 깊어졌다. ‘공장에서 만들면 이렇게 깨끗하게 소독하진 못 할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너무 투명해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비커에 햇살이 쨍하고 부딪혀 반짝이면 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고 만다.  



겨울엔 로션과 크림의 사용 속도가 다른 계절에 비해 3배는 빨라진다. 끈적임을 핑계로 몸에는 바르지 않던 로션을 겨울이 되면 온 몸에 바르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기가 귀찮아 아껴 사용할 때면 그냥 마트에서 대용량 제품을 사 와 온 몸에 치덕치덕 반질반질하게 바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종종 이 충동이 귀찮음을 이길 때마다 나는 화장품 코너 앞을 서성인다. 바디제품 앞에 서서 제품을 하나 골라 전 성분을 확인한다. 사서 쓸지라도 내게 필요한 성분이 들어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고보습에 간지러움증을 완화하는데도 좋은 ‘달맞이꽃 종자 오일, 호호바 오일, 해바라기 오일, 바오밥 오일, 아보카도 오일’ 딱 여기까지가 내가 필요한 성분이다. 하지만 기성 제품의 전성분에는 몇 가지 오일 뒤로 줄줄이 새까만 글씨가 이어진다.


대한화장품협회에는 총 2만 5백 건의 화장품 성분명이 등록되어있다. 같은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성분이어도 어떤 물질과 어떻게 결합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추출됐는지에 따라 성분명이 달라진다. 화학결합이라도 했다 치면 이름에 알 수 없는 영문표기가 섞여 들어간다. 이런 교묘함 때문에 일반인이 화장품 유해성분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외계어 같은 전성분표를 분석하며  나의 병은 점점 커져갔다. 



나무 혹은 식물 등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천연재료의 이름을 제외한 외계어 성분들은 대부분 화학재료일 가능성이 크다. 이 성분들은 보통 화장품의 사용감을 부드럽게 만든다거나 제품 속 여러 재료들이 잘 섞이는 데 도움을 주거나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재료들이다. 즉 이 재료들이 없다면 이 화장품은 세상에 나와 진열대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화장품이 만들어져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유해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첨가비율에 따라 유해정도가 결정되므로 이 과정을 통과했다면 아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천연화장품을 쓴 시절보다 만들어진 제품을 사서 쓰던 기간이 길었고 그 긴긴 세월 동안 어떤 피부 트러블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결국엔 기성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 국민으로 범위를 넓혀 봐도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사람보다 구매해서 쓰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은가. 하지만 화장품의 세계에 들어온 이상,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쓸 수는 없었다. 


이런 걸 ‘사서 고생한다.’고 하나요? 

무언가를 깊이 있게 알게 된다는 것은 불편하고 고달픈 일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극단적인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 가끔은 모르고 살았던 속 편한 시절이 그립다. 엄마도 이 고통은 몰랐기에 ‘미련하게 만들지 말고 사서 써.’라고 말해주지 않았겠지. 반면에 제약회사에 다니며 약을 기피하던 언니의 신념이 온전히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알고는 못쓰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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