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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Oct 08. 2022

당신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는,

천연화장품을 만듭니다.



‘으... 이 냄새 이거 뭐야?’ 뒤통수 저 너머로 로션을 짜는 남편의 찌푸려진 인상이 그려진다. ‘온몸이 간지러워. 간지러운 것만 좀 사라지면 좋겠는데? 피부가 하얗게 일어나는데 이거 없어질 수도 있나? 물처럼 흐르는 것 말고 똑똑 떨어지는 농도로 돼? 근데 또 너무 끈적이거나 쫀득거리는 건 싫어. 바르자마자 흡수되면서 촉촉했으면 좋겠는데...’ 여간 까다로운 고객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은 해를 거듭할수록 구체적으로 천연화장품을 사용하며 바라는 효과를 제시했다. 남편의 별스러운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서도 ‘향(香)’에 있어서만큼은 남편의 불평을 어물쩍 넘긴다.  



미리 캔버스 작업물 @해피쏨


연애시절, 남편이 건넨 첫 선물은 책이었고 두 번째 선물은 향수였다. 이 순서가 그의 취향에 근거한 애정도와 일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를 생각하며, 나에게 어울릴 향을 찾는’ 로맨틱한 과정이 생략됐다는 진실을 마주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넸을 뿐이었다. 굳이 꼽자면 무향을 선호하는 나는 그와 연애하는 2년 동안 달콤했던 100ml의 향수를 반도 쓰지 못했지만, 이후로도 향을 향한 그의 진심은 수시로 나에게 와 닿았다.


음식에 흩뿌려진 손톱만 한 향채를 골라내고, 새 옷에서 나는 공장의 기름 냄새를 맡았으며, 종이에선 꿉꿉한 세균 냄새가 난다며, 새로운 공간에서 예고 없이 들이마시는 아주 미세한 공기 입자에도 그의 코는 반응했다. 그는 이사할 때마다 온 집안의 하수관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주방, 세탁실, 화장실의 모든 배수관에서 냄새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트랩을 설치하는 일을 직접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빨래할 때 넣는 섬유유연제의 향이 건조기의 고온에 몽땅 사라지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종종 집 안 가득 향초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고열, 두통, 몸살, 근육통, 잔기침 등 수십 가지의 코로나 증상이 모두 비켜가고 후각 이상 증상만이 들이닥쳤을 때는 배기가스 냄새가 난다며 코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에게 향기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 이상의 것이었다.


어쩌면 남편에게 화장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향기일지도 몰랐다.  


천연재료 중 향을 내는 재료는 제일 마지막에 첨가하는 ‘아로마 에센셜 오일’이다. 식물의 씨앗, 뿌리, 잎사귀, 수액, 줄기, 꽃에서 추출된 고농축 휘발성 오일로, ‘특이취’를 가지고 있다. 본래 천연재료들은 거의 대부분 특이한 향을 갖고 있다. 이 중 에센셜 오일의 주성분은 식물들이 외부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하고 번식과 생존을 위해 만들어내는 세포에서 추출한다. 단 몇 방울로 극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고 피부에 자극을 주기도 하는 재료인 탓에 어린아이 혹은 임산부에게는 이마저의 향도 쓸 수 없다. 사용되는 양을 ‘방울’ 단위로 측정할 만큼 극소량이 첨가되고, 이미 특이취를 가진 다른 천연재료들과 혼합되기 때문에 에션셜 오일의 향은 오래가지 않고 사라지고 만다. 꼬릿한 한약재와 비슷한 향을 남긴 채.  


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일의 휘발성을 막기 위한 화학물질과의 결합이 필요한데, 천연 에센셜 오일은 ‘향’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결합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식물이 가진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와 치유를 위한 성분이므로.


약 1킬로의 네롤리 에센셜 오일을 얻기 위해서는 오렌지 꽃 1톤(1000킬로)이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담되는 가격에 10g씩 구매한다. 막상 지불한 가격에 맞지 않는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의 작은 10g의 오일병이 손에 들어오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세포가 이렇게나 적다니!? 얄궂은 꽃을 탓하다가 이 적은 양으로도 스스로를 지켜낸 식물의 단단함에 경외심을 느끼기를 반복하며 애써 가격과 질량의 간극을 줄여본다.


 ‘나를 보호하는 한 방울은 어떤 모습일까’ 무게 실린 사유에 빠져들기도 하면서.






모든 성분을 녹여내서인지 에센셜 오일의 활용범위는 심신안정과 같은 심리적인 영역부터 피부 진정과 재생의 신체적인 영역까지 두루두루 유용했다. 딱 한 가지 ‘향’만 빼고. 남편이 싫어하는 향임을 알면서도 피부 재생, 피부 탄력, 트러블 개선, 항염증, 진정, 주름개선 등등 에센셜 오일이 가진 한 방울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딱 한 방울만, 딱 한 방울만 더.


적은 용량으로 인해 특이취를 남기고 사라지는 모든 향기가 야속했지만 향기를 남기기 위해 용량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천연화장품을 사용한 지 6년. 겐조, 페라리, 존바바토스, 그린티 향을 좋아하던 남자에게서는 이제 은은한 한방 냄새나 사라진 꽃향기가 난다. 사라진 향의 대가로 갈라지지 않고 가렵지 않고 촉촉한 피부가 남았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그의 킁킁거림에,        



 “다 가질 수는 없잖아!”라는 인생의 진리가 나를 보호하는 한 방울 인양,   나는 오늘도 에센셜 오일을 첨가한 효과 좋은 천연화장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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