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0.001mm의 차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4. 0.001mm의 차이
‘지금은 확실히 다른 걸 알겠어!’
2년을 연애하고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남편의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건 나였다. 한 살 터울인 언니는 동그란 얼굴에 새까만 머리숱을 가진 엄마의 외모를 쏙 빼닮았다. 반대로 나는 피부 결부터 가는 머리카락까지 아빠를 닮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얘기가 40년째 전혀 통하지 않는 부모님으로부터 우리는 각각 다른 유전자를 받았다. 의아한 것은 자라는 내내 우리 자매를 따라다닌 쌍둥이설이었다. 이렇게 다른데, 쌍둥이라니?! 그저 처음 만난 사람을 향한 인사치레같은 멘트일거라며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던 우리는
결혼식 당일 메이크업을 곱게 한 우리 자매의 얼굴을 훑으며 각 집안 사돈 어르신들의 우리며느리찾기 토론배틀을 바라보며 인정하게되었다. 이마라인, 피부색, 얼굴형, 눈썹 모양, 머리카락 한 올까지 어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지만 우리는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쌈채소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쌈 재료는 상추다. 깻잎, 치커리, 케일 등이 다 있어도 야들야들 부드럽고 넓적한 상추를 마지막으로 감싸 한 입에 넣어줘야 쌈 싸 먹는 맛이 난다. 같은 상추지만 생긴 것도 맛도 쓰임도 달라서 상추 삼총사는 텃밭이 생기자마자 제일 처음 심은 작물이다. 씨앗을 구입하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씨앗 봉지를 탈탈 턴 순간, 씨앗봉투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봉투에 적힌 이름은 분명 모두 다른데 안에 들어있는 세 종류의 씨앗은 같은 씨앗이었다. 잘못 산 걸까? 설마설마하며 씨앗을 심었다. 며칠 후 상추 삼총사의 떡잎이 나왔다. 떡잎도 똑같았다. 다시 며칠 후 본잎이 나왔다. 본잎도 똑같았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그럼 대체 나는 상추 삼총사 중 어떤 상추를 산 걸까. 개인적인 선호도를 따지자면 청상추> 양상추>적상추 순이라서 모두 같은 상추씨앗이라면 다 자라서 청상추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한 달 후.
상추들의 본 잎이 서서히 커지면서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청상추는 푸릇푸릇했고 적상추는 색이 점점 진해졌다. 양상추는 조금 단단한 잎으로 자라났다.
세상에! 상추 삼총사다!
나는 씨앗을 분류했던 통을 열고 다시 한번 상추 삼총사의 씨앗을 찾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청상추의 씨앗은 아주 미세하게 컸다. 약 0.001mm의 차이였지만 셋을 비교하니 가장 큰 게 느껴졌다. 양상추의 씨앗이 제일 작았는데 이것도 비교하자면 0.001mm 정도였다. 제일 작은 씨앗에서 제일 단단한 잎을 탄생시키다니 괜스레 이 작은 씨앗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바람을 따라 흐늘거리는 상추 잎의 손짓이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여리여리한 씨앗들과도 닮았다. 그러고 보니 총각무와 무의 씨앗도, 치커리와 레드 치커리의 씨앗도 서로 닮았지만 다르게 자라난다.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0.001mm의 차이를 알아채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것과도 같았다. 인생에서 나를 확실히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시선은 내가 나로 자랄 수 있는 응원이 된다.
너희가 상추삼총사가 될거라 믿었어
라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