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파랑 삽의 마법

주문을 외워보자

by 해피쏨

#3. 파랑 삽의 마법주문



나무로 된 목각 볼펜이 보이면 열리는 지갑을 막을 수가 없다. 캐릭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볼펜, 스노우 볼처럼 눈 내리는 볼이 달려있는 볼펜, 반짝이는 큐빅이 달린 볼펜까지 세상엔 예쁜 볼펜이 너무 많다. 안타깝게도 예쁜 볼펜들은 하나 같이 볼펜심이 짧다. 쓰는 건 금방인데 다 써도 매몰차게 버릴 수가 없다는 점이 구매를 고민하게 하는 유일한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볼펜을 손에 쥐고 있으면 한 번 더 쓰기 위해 괜히 책상에 앉게 된다. 신기하게 공부도 더 잘 되는 느낌이 든다. 마치 마법처럼.



텃밭을 가꾸기로 한 이후 가장 많이 들렀던 곳은 종묘사도 농업사도 아닌 다이소였다. 4평 남짓한 텃밭의 흙을 갈기 위해서는 삽이 필요했지만 나는 모종삽을 사기로 했다. 한 가지 색으로 페인팅된 모종삽은 1천 원, 알록달록 잔 꽃무늬가 수놓아진 모종삽은 2천 원이었다. 고민도 없이 나는 꽃무늬 모종삽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졸졸 따라다니며 나의 선택을 지켜본 아홉 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어차피 흙이 묻으면 꽃무늬가 안 보이지 않아요?”

#뼈맞았다

비밀인데 , 사실 이건 엄마의 마법도구야.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그간 딱딱하게 굳어있던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딱딱해진 땅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30센티 이상 깊게 파서 흙의 위아래를 뒤섞어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솎아야 하는 4평 텃밭은 한 손에 들어오는 모종삽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농자재센터를 찾아갔다. 뾰족한 삽부터 네모난 삽, 갈기가 있는 삽, 금칠이 된 삽까지 삽의 크기부터 모양까지 다양한 삽이 진열되어있었다. 딱 보기에도 기능이 모두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에도 “농사지을 곳이 몇 평 정도 되나요?" " 어디에 쓰실 거예요?" 란 질문을 가볍게 건너뛰고 "아 , 저기 저 파란색 삽 주세요!"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결국 이 삽의 기능을 모른 채 파랑 삽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나의 파랑 삽과 꽃무늬 모종삽, 파인애플 분무기, 형광 가위의 마법도구가 완성됐다.

이제 마법주문을 외울 차례.


파랑 삽을 볼 때마다 흙을 파고 싶어지겠지.

형광 가위를 볼 때면 한 없이 뻗친 식물들의 가지치기를 해주고 싶어질 거고

꽃무늬 모종삽을 들었다면 아마도 뿌리 옆 모자란 흙을 채우고 있겠지.

파인애플 분무기로 작물의 잎이 마르기 전에 물을 주고 싶어질 거야.


어떤 일을 지속하기 위한 마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는 것이다. 알록달록 볼펜처럼, 한 번 더 잡고 싶어 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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