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장기가 배꼽까지 내려와 있어요.’
아침 일찍 눈뜨기가 버겁고 모든 일을 마감시간 직전에 처리하는 나의 문제적 행동이 이런 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한의학에 따른 진단을 읊어보자면 너무 좁은 상체 골격 때문에 위장을 시작으로 모든 장기들이 배꼽까지 내려와 있고 이로 인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하며 기운이 달리고 모든 장기의 기능들이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열 손가락의 손끝을 한데 모아 나의 몸통을 구석구석 누르며 고개를 저으시던 한의사 선생님의 진단으로 나는 35년 만에 ‘게으른 애’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밥 먹자마자 설거지하기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이불 정리하기
물건 쓰고 바로 제 자리에 두기
수건, 속옷, 검은 옷, 흰 옷 분류 세탁하기
새벽 기상
식기세척기 안 세척 완료된 그릇을 상부장에 정리하기
건조 완료된 빨래 바로 개키기
더 이상 모든 일을 그때그때 하는 것이 내게 해당되지 않게 된 후, 나는 내일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내일 하지 뭐'라는 단념보단 , '내일은 할 수 있을거야.' 라는 의지가 불타는 오늘을 보내는 것.
그토록 원하던 텃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텃밭에선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았다. 돌과 잡초가 뒤섞인 땅을 고르게 갈고 개미 소굴을 소탕한 후 비료를 뿌려주고 흙의 비율을 맞추고 고랑과 두둑을 만들고 모종과 씨앗을 고르기 위해 오일장을 나서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선 엄청난 오늘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것은 설거지나 이불 정리 따위의 일과와는 차원이 다른 내일이었다. 조금 수월한 내일을 위한 밑작업이 필요했다. 텃밭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글과 사진, 영상까지 넘치는 정보의 시대에 사는 덕에 소모해야하는 에너지는 크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텃밭에 심는 시기별 작물, 심는 방법, 수확시기, 잘 키우는 법 등을 검색했다. 나의 수많은 오늘은 이렇게 흘러갔다.
처음엔 텅 빈 텃밭을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의 오늘이 보이는 것 같아 불편했다. 한의학을 거들먹거리며 애써 부정했던 나의 게으름을 매일 아침 마주치는 기분이었다. 이런 불편한 마음들이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도 변함없는 텅 빈 텃밭때문이었다. 텃밭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나의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나는 내일의 시작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야지. 나의 내일을 기다리는 텃밭을 위해.
'내일은 할 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