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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Oct 03. 2022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것들

_ 보고 있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

아이를 키우다 보면, 끝나지 않는 질문 공격을 자주 받게 된다. 5학년 초등학생인 첫째는 이제 무언가 물어보는 것이 많이 줄었지만, 2학년 초등학생인 둘째는 요즘도 질문을 쏟아내곤 한다. 그동안 받은 수많은 질문들 중에 지금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는다면,

‘아빠, 회사에 왜 가?’

‘돈은 왜 벌어야 해?’

‘회사에 가면 왜 회사에서 돈을 줘?’

‘공무원이 뭐야?’

‘우리 집은 가난해? 부자야?’

‘남자랑 여자는 왜 달라?’

‘이거 해봐도 돼?’

‘***은 왜 그래?’

등등.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이 끝없는 질문의 공포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질문들의 대부분은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당연함이 설명을 하려고 하면, 때때로 매우 어렵다. 그럴 때마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하는 것들이 정말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난 대부분의 것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짜 투명인간 (레미 쿠르종 지음, 이정주 옮김, 씨드북 출판)’은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 블링크 아저씨와 꼬마 에밀의 이야기이다. 초등학생 권장도서이기도 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도 된 이야기여서,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들은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시각장애인 블링크 아저씨를 위해서, 꼬마 에밀이 색깔을 가르쳐주기로 결심하고,  꼬마 에밀은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 블링크 아저씨에게 색깔을 ‘설명’ 해 준다. 색깔은 비시각장애인은 ‘설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에 색깔의 이름을 암기함으로써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아기를 빨간 장미가 핀 꽃밭에 데려가서, 활짝 핀 장미를 가리키며, ‘이게 빨간색이야’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지, ‘빨간색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의심 없이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이 ‘색깔’이다.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등을 아주 과학적으로 암기하게 된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것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색깔’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아니, 색깔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책 속에서 꼬마 에밀은 이렇게 색깔을 설명한다.


…… 가장 초록색인 것은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살살 삐져나오는 촉촉한 풀잎이에요.

가장 붉은색인 것은 할아버지 밭에서 나는 토마토 맛이에요.

가장 푸른색인 것은 옆집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이에요.

가장 노란색인 것은 분필이 날아가 교장 선생님 머리에 박혔던 날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에요.

가장 검은색인 것은 범인이 자수하지 않아서 우리 반 전체가 벌을 받았을 때에요.

가장 흰색인 것은 여름에 푹 자고 열 시쯤에 일어났을 때에요. …… - 진짜 투명인간(레미 쿠르종 지음, 이정주 옮김, 씨드북 출판) 중에서


꼬마 에밀의 ‘색깔 설명’을 보고 나니, 난 그동안 색깔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색깔을 가르친 것은 ‘색깔을 보여주고, 암기’ 시킨 것이지, 색깔을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도 색깔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을 열심히 외웠고, 학교에서 색맹이나 색약 검사를 하면, 혹시나 색맹이나 색약일까 봐 조마조마해가면서 검사를 받았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색깔을 암기하고 있었지만, 색깔을 알지는 못했었다.


지금도 아이의 질문에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정확히는 모르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거 같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다시 어른으로 세월을 겪어가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겪었지만, 어쩌면, 그중 대부분을 ‘그냥 눈이 보이는 그대로 암기’했을 뿐, ‘그것들을 알려고’ 혹은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가 내게 물어보면,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답하며, 나처럼 ‘알려고 혹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암기하라고’ 가르쳐왔는지도 모른다. 나만 이렇게 지내왔을까? 아마도 아닌 것 같다. 내 주위의 많은 어른들이나, 각종 언론에 등장하는 여러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도 나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어떤 사실을, 혹은 어떤 상황을 알고 이해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자신을 따라서 그냥 암기하라고 아주 큰 목소리로 외치는 어른들이 꽤 많아 보인다.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 블링크 아저씨는 눈 수술을 한 후에,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 눈으로 보게 된 색깔을 모두 맞추어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을 것 같다. 심지어 눈을 보게 된 후, 처음 본 것이 ‘빨간 사과’ 일 지라도, 바로 ‘빨간색’이라고 맞추어서,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는 모두 꼬마 에밀이 색깔을 암기시켜준 것이 아니라, ‘설명’ 해 주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서, ‘당연히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하고 싶으니, 설명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안다고 알고 있었던 것의 대부분은, 암기하고 있었던 것들이지, 이해해서 알고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열심히 고민해서, 이해하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다음에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눈을 떴을 때, 결코 당황하지 않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준비가 된 건 아이들이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어른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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