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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Jun 08. 2023

01. 쉰둘, 취준생이 되었다.

- 낯선 듯, 낯설지 않은 하루하루

쉰두 살. 올해 내 나이이다.

물론 6월 28일부터는 다시 쉰 살이 된다. 사실, 쉰두 살이건 쉰 살이건 크게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50대의 중년 남성이다.


쉰두 살에, 지난 4월 1일부터,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되었다. 2001년부터 다닌 회사를 퇴직하였다.

퇴사를 해본 적은 전에도 있다. 첫 직장은 1996년 12월에 입사하였었다. 당시에는 대학교 졸업 전에 겨울방학부터 취직한 회사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었다. 그래서 졸업은 1997년 2월이지만, 첫 직장 입사는 1998년 12월이었다. 그리고, 1999년 7월에 첫 직장을 퇴사했다. 그리고 2001년 7월에 두 번째 직장에 입사를 했다.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 사이의 기간 동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 공부를 했었다. 물론 고시에는 떨어졌고, 두 번째 직장에서 직장생활, 소위말하는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생활을 끝내기로 결정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사가 구조조정을 위한 희망퇴직프로그램(혹은 조기퇴직프로그램)에 시행하였고, 희망퇴직프로그램에 신청하여 퇴직하였다. 희망퇴직프로그램에 내가 신청한 것임으로 '자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아마 이 '자의'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 것이다. 그래서, 다행히도 실업급여라는 것을 고용보험에서 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취준생(취업준비생)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취업준비생이었던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군대 제대 후, 4학년으로 복학한 후,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다음, 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당시에는 다행히도 영어성적(토익)이 취업의 필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있으면 좋은 것이었기에, 영어 공부를 좀 하였었다. 그리고, 회사에 면접 보러 다니면서, 받은 면접비로 저녁에 복학생끼리 술 한잔 하는 재미가 있었다. 당시에는 기업들이 면접을 하면, 합격여부와 상관없이 면접비라는 것을 주었었다. 첫 취준생 생활은 길지 않았다. 복학 후, 열심히(?) 면접을 다는 덕분이었는지, 5월경에 입사가 확정된 덕분에, 12월 입사일 전까지는 맘 편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 시기였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맘을 먹고, 퇴사를 하였었다. '고시 준비'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였다. 고3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다. 만약 고3 때, 그렇게 공부했다면, 다른 대학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시에서 떨어졌고, 고시에 재도전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하기로 하고, 취준생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어점수가 필수가 되어있어서, 토익시험도 세 번이나 보았고, 영업직에 지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전면허도 땄다. 그리고, 첫 직장생활에서 모아둔 돈은 고시공부를 하며, 모두 탕진한 상황이어서,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도 했다. 취준생 생활을 하며,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전히 난 젊었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였지만, 나 하나만 내가 책임지면 되는 삶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취업정보실에서 추천받은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였고, 채용이 되어서,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지금 내 인생 세 번째 취준생이 되었다. 그래서 사실 낯설지는 않다. 이미 두 번이나 경험해 본 하루하루이다. 삶에서 같은 상황을 세 번씩이나 겪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능숙하고 익숙하게 취준생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그렇지가 않다. 그 사이에 나는 결혼을 하였고,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이 되었다. 아내는 육아를 위해, 본인의 경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된 지, 6년이 되었고, 두 딸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빠가 집에 있다고 좋아하는, 아직은 철없는 딸들이지만, 나를 꼭 닮았기에,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책임져주어야 하는 소중한 아이들이다. 육아를 위해, 경력을 포기한 아내 역시, 육아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오면, 다시 본인의 삶을 찾아야 하는 소중한 내 사람이다. 그래. 가장 변한 것은 두 번째 취준생시절에 '나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삶'이었던 나에게, '소중한 가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낯설지 않아야 하는데, 취준생인 내가 낯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초초해하지 말자. 내가 나를 쫓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쫓아대지 않는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이 이야기는 '내가 불안해하고, 초초해한다'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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