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중딩과 초딩인 아이에게도, 부모인 나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
내가 키우고 있는 두 공주는 한 명은 중딩, 또한 명은 초딩이다.
두 공주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 그리고 가장 힘들어하는 일은 '친구관계'이다.
공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우리 집은 사설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적은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의 교우관계는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학원차에 줄 서서 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나 도서관을 기웃거리다가, 같이 놀 친구가 있으면, 같이 놀고, 아니면 집으로 오는 편이다. 그래서, 친구와 있는 것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에서 한문이라는 과목에서, 공자가 말한 즐거움을 배운 적이 있다. 그 즐거움 중 하나가 친구에 관한 것이었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친구가 멀리서 찾아온다면, 역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친구’, ‘멀리서’. ‘온다’ 그리고 ‘즐거움’ 일 것 같다.
친구의 구는 ‘옛’이라는 뜻이다. 즉, 친구란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낸 이, 그리고 나를 알아주는 이를 뜻한다. ‘사업적인 관계’나 ‘사회적 관계’와는 다른 말이다. 그럼, 요즘처럼 SNS만을 통해서 알게 된 이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인스타팔로우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좀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멀다’의 뜻은 아마도 넓은 중국땅과 당시의 교통수단을 생각한 ‘공간’에 관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고속철도가 있고, 비행기가 있으며, 더 빠른 교통수단이 계속 개발 중인 세상에서,'공간의 거리’는 과거만큼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난 이 '멀다'의 의미를 지금은 '시간의 거리' 혹은 '마음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공간의 거리’는 기술로 극복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시간의 거리'는 상대성이 점점 더 강해져서, 나와 친구가 느끼는 시간의 거리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온다’의 의미는 물리적인 만남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지금도 ‘물리적 만남’이 더 소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이 인터넷과 비대면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물리적 만남이 중요하다. 너무나 쉽게 화상으로 비대면 미팅을 할 수 있고, SNS로 소식을 전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친구가 찾아온 기쁨’을 인생의 3가지 기쁨 중 하나로 이야기하려면, 직접 만나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 50여 년의 인생을 통해서, 찾은 친구는, 그리고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는 몇 명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다른 회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그 회사의 'A'라는 직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갑자기 듣고 있던 'B'가 '나 A랑 친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때였다. 난 'A'와 'B'를 모두 알고 있었고, A와 B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나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지를 직접 들은 적도 많았는데, 내가 판단하기에는 'A와 B는 아는 사이일 수는 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였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꽤 많았다. 즉, 직장인들이나 사회인들이 '친하다'라고 말하는 의미는 내 기준의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관계를 고민하는 두 공주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아빠는 너희보다 오래 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지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뿐이야. 그리고 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고등학교 이후에 만난 사람들이고, 몇 명은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기도 해. 지금 어떤 아이가 인기가 많고, 친구가 많은 것이 부럽겠지만, 그 아이들이 지금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로 계속 만날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을 수도 있어. 중요한 건,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 같아. 지금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도서관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면, 언제가 정말 '나를 알아주는' 그리고 '내가 알아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내가 나를 모르면, 나를 아는 친구를 만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친구를 얻기 위해서, 네가 불편한 것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난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난 이런 때 불편하구나. 내 마음은 이렇게 있을 때 편하구나.'를 알아가면 좋겠어.'
내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지만, 나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