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느긋한 시침을 돌리는 바쁜 초침을 위해
“아빠, 시계가 또 빨라졌어.”
둘째 아이가 아침을 먹다가 불현듯 생각난 듯 말했다.
우리 집 식탁에서 보이는 디지털시계는 이상하게도 한 달에 2분 정도씩 빨라진다. 어딘가에서 판촉물로 받은 시계라 AS 받을 방법이 없어서, 10분쯤 빨라지면, 시간을 다시 맞추곤 하며 사용하고 있다.
왜 시계가 빨라질까? 궁금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디지털시계의 원리를 찾아봤다.
시계 어딘가에, ‘쿼츠(Quartz)라고 적혀있으면, 수정진동자를 이용한 시계라고 한다. 수정진동자는 전기가 흐르면, 1초에 3만 2768번 진동한다고 한다. 시계의 배터리는 이 진동을 일으키기 위한 전기공급원이고, 시계는 이 수정진동자의 3만 2768번의 진동을 1초로, 다시 60초를 1분으로, 그리고 60분을 1시간으로 바꾸면서 시간을 표시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쿼츠시계는 바늘로 돌아가는 시계이던, 숫자로 표시하는 시계이던, 엄밀히 말하면, 아날로그 방식의 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디스플레이의 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동안 내가 디지털시계라고 불렀던 시계 중, 상당수는 진동자를 기본으로 하는 아날로그시계인데, 디스플레이방식이 디지털이었던 셈이다.
쿼츠 시계는 수정자가 진동의 숫자가 줄어들면, 시계가 빨라지게 된다. 그러나, 1초에 3만 2768번의 진동의 숫자가 조금 준다고 해서, 사람이 인식하기는 어렵다. 즉, 쿼츠 시계가 사람의 눈으로도 빨라진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 시계의 진동자는 피로에 절어서, 엄청나게 안 좋아진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으로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속도로 많은 일을 하다가, 탈진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려나.
디지털시계(혹은 전자시계)라고 원리적으로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시계는, 전기의 주파수(헤르츠)의 반복 횟수를 바탕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즉, 초당 헤르츠를 몇 회로 정의한 후, 이 헤르츠를 가지고, 1초를 측정하고, 다시 이 1초가 60번 모이면, 1분이 되는 것이 디지털시계이다. 이 헤르츠라는 것의 1초당 횟수는 수정진동자의 진동 횟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적다고 한다.
아마 우리 집 시계는 정확힌 의미의 디지털시계인 것 같다. 만약, 수정진동자 시계라면, 초당 진동수를 고려했을 때, 한 달 만에 2분씩이나 빨라질 수는 없다. 초당진동수가 3만 번이 넘는 수정진동자가 1초에 100번을 덜 진동한다고 해봐야, 300분의 1초 빨라질 뿐이다. 반면에 만약 디지털시계의 헤르츠라는 것이 원래는 1초에 50번 진동했는데, 100번을 덜 진동한다면, 2초씩 빨라지게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손목시계나 벽시계는 쿼츠시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계 안의 수정진동자가 서서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진동수가 줄어들고 있더라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더군다나 초침이 없는 바늘시계나, 숫자로 시와 분만 보여주는 시계를 가지고 있는 이는 더욱더 수정진동자가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이들이 ‘시계의 시간이 맞지 않음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수정진동자는 많이 망가져버린 다음이다. 그리고 이 시계를 고치는 방법은 ‘수정진동자를 고치거나 교체하는 것’이다. 시침과 분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사회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세상의 큰 그림을 보는 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시침과, 자기도 시침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시침보다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분침들만 보이는 것이 지금의 세상인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시간을 측정하고, 시계를 움직이는 것은 수정진동자이다. 이들은 이미 지쳐서 움직임이, 활동이 늦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망가져가는 수정진동자를 도와주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시침과 분침이 돌고 있는 시계판만 열심히 닦고, 기름치고,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수정진동자가 멈추면, 분침도, 시침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수정진동자가 멈추면, 시침과 분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수정진동자가 멈추기 전에, 쓸데없이 시계판을 광내는 일을 멈추고, 수정진동자를 돌봐야 하는데, 우리는 이 귀중한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의 손목시계는 디지털 방식으로 표시되는 쿼츠 시계이다. 내년 아이들의 생일쯤, 바늘 손목시계로 바꿔주며,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것은, 시간을 세고 있는 것은 분침이나 시침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시계 속의 수정진동자라고 이야기해 줘야겠다. 그래서, 시계가 시계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계 케이스나 디자인이 아니라, 수정진동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