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다른 이의 성취가 아닌, 내 성취에 내가 환호를 보내자
파리올림픽이 한창이다.
TV를 켜면, 경기 장면 속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와 환호를 보내는 군중을 볼 수 있고, 한국 선수가 선전한 날이면, 아파트 단지 안, 열린 창문을 통해 환호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큰 운동경기가 있는 날, 아파트 단지 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는 익숙한 소리이다. 물론, '큰 경기'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Big match라는 표현은 중계하는 곳에서 만든 표현이 아닐까? 인기종목이던 비인기종목이던, 국가 간 대항전이던 국내 선수들끼리의 대항전이던, 선수들에게는 모두가 중요한 한 경기 한경기일텐데, 어떤 경기를 big match라고 부른다면, 다른 경기는 small match라는 뜻인데, 이건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축구, 야구, 올림픽 등의 경기가 있는 밤이면,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환호가 들리기도 하고, 동네 술집에 가도 대형 TV를 틀어놓고,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환호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환호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동물도 이 같은 감정이입이 가능한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성취를 위해, 파이팅을 나 자신에게 외치고, 내 성취에 환호하고, 아깝게도 1등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나?"
이상하게도 뚜렷하게 기억 남는 것이 없다. 나도 분명히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대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도 하였고, 군대도 무사히 마쳤고, 힘들게 취직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친 기억도, 환호한 기억도 없다. 나만 이런 것일까?
난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은 예외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환호하고, 괜찮다고 위로해 준 기억이 없다면, 운동 경기를 보며, 혹은 다른 이의 성취를 화면과 책을 통해서 보면서, 파이팅을 외치고, 환호하고,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역시 허상은 아닐까?
오늘부터, 아침에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에 작게, 속으로, 그러나 분명히 '파이팅' 외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오늘 성취한 일에 대해 작게, 속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나 자신에게, '환호'하거나 '괜찮다'라고 말해준다면, 내 하루하루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