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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Feb 07. 2024

파리 아뜰리에 생활

파리지엔느 1년 차.




아뜰리에에서 정식으로 직원이 되고 일지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이 내 풀네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아뜰리에에 갔을 때 내 이름이 어렵다고 보스가 앞글자만 따서 지(Ji)라고 불렀고 그래서 모든 직원들은 나를 마드모아젤 지(Mademoiselle Ji)라고 불러왔다. 재단사인 F가 내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냐고 물었고 혹시 의미 같은 게 있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내 이름을 들으면 ‘한글 이름이에요?’ ‘한자로 어떻게 써요?’라고 묻는데 그럼 ‘뜻 지에 새벽 흔이에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 ‘ça veut dire le sens de l’aube. (새벽의 의미라는 뜻이에요.)’라고 대답했다. F는 '너네 부모님은 엄청 철학적이시구나!'라고 했고, 사실은 할머니가 잘 아는 철학관에서 지어오신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철학관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렇다고 웃었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곳에서 이렇게 일을 하게 될지 생각지 못했다. 한국에서 일을 구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과 좋은 근무 환경을 가졌을 확률이 높겠지만 프랑스 회사가 내 정신 건강에 좋은 이유는 확실히 있었다. 일단 내가 여자라서, 특히 나이가 가장 어려서 라는 이유들로 전혀 피해를 보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종종 보스들이 나의 커피를 챙겨 주기도 했고, 추울 때면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히터를 세팅해 주고 가기도 했다. 프랑스로 오기 직전 막내로 알바를 했던, 실장님 커피물까지 계량해야 하던 모 대기업 디자인실을 떠올리면 과연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은 아뜰리에가 바쁜 기간이었는데 가족들이 파리에 온 바람에 휴가를 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더니 직원들은 괜찮다며 'C'est ta vie!(그건 너의 삶이야!)'라고 말했는데 그 또한 충격이었다. 








정식 직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처음으로 보스가 나를 피팅 미팅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때가 파리에 온 지 1년쯤 지날 때였다. 아뜰리에에서 간단한 대화는 어렵지 않았지만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미팅을 들어가는 건 상당히 긴장이 되었다. 심지어 보스가 나에게 맡긴 임무는 샘플 의상 피팅을 보는 동안 나온 얘기들, 특히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받아 적는 일이었다. 하얀색 종이 위에 푸른빛의 줄이 그어진 A4 사이즈 노트를 들고 들어가 보스 옆에 섰다. 모델이 입고 있는 의상을 디자이너와 보스가 번갈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라인테이프와 시침핀으로 수정할 부분을 잡고 줄자로 치수를 쟀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단단히 잡고 메모를 했다. 미팅이 끝나고 보스에게 노트를 건넸다. 몇 분 후 보스가 나를 불러 빠진 것 없이 잘 적었다고 말하며 노트를 돌려줬다. 첫 미션을 통과한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다. 어느새 미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어가 늘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날 밤은 집에 가는 길에 기분 좋게 디저트를 사 먹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보스는 외부 미팅을 나갈 때도 나에게 조수 역할을 허락했다. 대부분 샘플 제작한 의상을 디자인실에 가서 모델 피팅을 보는 일이었고, 나는 첫 미팅 때와 동일하게 수정할 부분을 노트하는 것과 샘플을 잘 챙기고 들고 나르는 일을 맡았다. 파리에 위치한 크고 작은 패션 브랜드의 하우스를 방문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언제나 나는 초긴장 상태로 들어갔고 열심히 받아 적는 일에는 많이 적응했지만 여전히 입은 잘 떨어지지 않아 종종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몇 년쯤 지나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날은 결국 오진 않았지만, 나이와 경험이 좀 더 쌓였더라면 여유가 더 있었을까?







바늘 꽂고 퇴근하기가 일상이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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