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책 보기
주말에는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 음악 들으며 일기도 쓰고, 책도 보고, 하늘도 보곤 했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게 되었던 공간인 국립도서관 BnF.
열람실에 들어가진 않고 복도 의자에 앉거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왠지 울적한 날 혼자 다녀오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공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도 그런 공간 중 하나였다. BnF에서 강 건너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 한번 갈 때 두 군데를 산책하고 오는 코스.
친구들과 주말 오후 센강에서 맥주나 와인 마시며 이야기하던 시간도 돌이켜보니 정말 소중하다.
또 정말 좋아했던 공간 중 하나인 Les grands voisins. 옛날 어린이 병원을 개조해서 만든 아티스트 레지던시 겸 문화복합공간이었는데 흥미로운 곳이었다.
주말에는 친구들 집으로 자주 놀러 가곤 했다. 한국에선 잘 안 하게 되는 일.
블로그를 통해 만난 친구 결이와 어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 상아와 함께 결성한 맛뜰리에 모임. 음식과 예술을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모였는데 주로 먹는 것에 집중했다는..
각자 집에서 돌아가면서 요리를 하곤 했는데 이날은 한국 추석 날, 결이가 만들어준 추석 상.
그림을 잘 그리는 결이와 상아가 리옹의 공원에서 아이들 그림을 그려주며 인기를 끌었던 재밌는 추억.
한동안 혼자 꽂혀서 열심히 했던 비즈공예. 주로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었다.
사실 쉬는 날의 대부분은 집에서 누워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누텔라를 바른 식빵을 먹곤 했다.
퇴근하고 혼자 영화보러 가던 시간들도 소중했고.
집 앞.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파리 산책. 퇴근길에도, 휴일에도 정말 많이 걷고 또 걸었다. 주로 좋아했던 길은 집에서 뤽상부르 공원을 지나 오데옹을 지나 퐁네프를 건너기.
그리고 부르델 미술관.
토요일 아침에는 집 앞에 서는 마르쉐에 가서 과일과 채소를 가득 사 오는 루틴이 있었다. 귀찮아도 다녀오면 활기도 얻고 건강한 식재료도 얻고!
프랑스에서 제일 좋아했던 과일은 멜론과 복숭아, 오렌지였던 것 같다.
가장 좋아했던 집 앞 카페 Un Grain Décalé. '어긋난(이상한) 원두'라는 이름이 너무 매력적이다. 신기하게도 카페의 주인 남매와는 파리의 가족처럼 애틋한 관계가 되었다
또 파리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인 Pouya. 생마르탱 운하 앞에 있는 이란문화원 겸 카페다. 또 신기하게도 이 곳을 운영하는 아바스와 절친한 사이가 되어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파리의 생활들을 생각하면 고독감, 불안감 그리고 항상 혼자 우울하게 있었던 날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찾아 정리해 보니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들이 정말 많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있던 나를 매번 불러내어 자기 프랑스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같이 놀게 해 주었던 수진이. 블로그를 통해 친구가 된 결이와 어학원에서 만난 상아와는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서는 특히 내가 쓸쓸해할 때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일본인 친구 니와카와 미국인 친구 젠, 그리고 내가 남미 스타일 정서랑 잘 맞는다며 타코 모임에 끼워주던 브라질 친구들이 떠오른다. 파리 생활의 막바지에 친해진 집 앞 카페 바리스타 남매 로라와 빠트릭은 내가 한국에 돌아가는 날 짐까지 챙겨주고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었으며, (다음 달 내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온다!) 이란문화원의 아바스는 언제나 음식과 차, 와인, 아이스크림을 나와 내 친구들에게 흔쾌히 내어주었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다(여름에 파리에서 열릴 나의 결혼 파티의 장소도 제공해주기러 했다!). 앞집 다니엘과 파티마, 회사 보스 부부와 직원들도 나에게 언제나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생각해 보니 파리는 나에게 고독과 우울보다 사랑과 따뜻함이 더 컸던 것 같네. 그것을 품고 나누기에 그 당시 내 마음이 너무 작았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