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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란 Jun 10. 2024

밥 먹는 게 수행이라고요?

쁘라사담prasadam

바이런베이에서 흥청망청한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하레 크리슈나 농장으로 돌아왔다. 전에 하던 우프(자원봉사)를 이어나가며 틈틈이 사원의 예배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꾸준히 책을 읽으며 그들의 주요 수행법인 만트라 명상을 시작했다. 일 년 뒤에는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아쉬람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수행생활을 시작했다. 


봉사 활동 하던 시절에는 주로 농장 일을 했는데, 아쉬람에서는 청소 일이 많이 들어왔다. 화장실 청소, 사원 청소, 바깥 청소, 식당 청소, 주방 청소 등등 사람이 많은 곳이다 보니 청소할 곳도 많았다. 청소는 여러 가지로 중요한 수행이었다. 청결은 신성함과 붙어 있는 자질로, 수행자라면 머물던 곳을 떠날 때 더 깨끗하게 만들고 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내면 의식을 반영하기에, 자기 방 청소는 특히 중요했다. 수행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질투, 미움, 화, 자만 등 마음의 때를 정화하는 것인데, 청소로 바깥 환경을 정화하면서 내면의 정화도 이루어진다. 또 청소는 내가 좋아하는 강연자의 경전 수업을 들으면서 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또 다른 중요한 수행 활동은 흥미롭게도 밥 먹기였다. 나는 곧 내가 먹는 음식이라는 말처럼 박티 요가 수행자들은 먹거리를 신중히 선택한다. 채식과 오신채 금지는 기본이고, 음식의 영양소뿐만 아니라 음식의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음식에 깃든 에너지도 꼼꼼히 가려서 먹는다.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의식이 깃들기에 수행자들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만들어지고 판매하는 음식 안에 들어있는 의식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사원의 음식은 쁘라사담prasadam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의 자비를 뜻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빚을 진다. 우리를 세상에 내보내준 부모의 빚뿐만 아니라 조부모, 조상께 빚을 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자연에 빚을 지고, 지식을 전수해 주는 스승에게 빚을 진다. 비록 수행자들은 살생을 금하지만 단지 호흡을 하기만 해도 박테리아와 미생물을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없고, 길을 걷기만 해도 개미와 벌레를 죽이는 게 불가피하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빚을 지고 카르마(업보)를 쌓는다. 채식을 하면 살생을 하지는 않지만 생명 유지를 위해 식물을 섭취해야 하기에 여기에서도 카르마가 쌓인다. 그러나 음식을 먹기 전에 신에게 먼저 바치면 신이 카르마를 거두어 주기에 업보가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음식을 자비라 여긴다. 


왜 이렇게 카르마를 경계하는 걸까? 카르마는 우리를 이 세상에 얽매이게 하고, 이게 완전히 정화되지 않는 한 다시 생로병사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물질계로 돌아와 윤회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쁜 업보를 쌓으면 그 대가를 받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하고, 좋은 업보를 쌓아도 그 대가를 받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 세계에 돌아오는 게 어때서?라고 묻는다면 나이 들고, 병에 걸리고, 결국 죽게 되는 게 정말 괜찮은지 되묻고 싶다. 또한 물질계의 세 가지 고통-자연재해와 날씨 등 자연으로부터 오는 고통, 직장상사나 모기와 같은 타 생명으로부터 오는 고통, 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지도 묻고 싶다. 이런 고통은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이를 피할 수 없는 이 물질세계 또한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속한 곳이 아니다. 생명체는 본디 불멸하고,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존재이다. 쁘라사담은 의식 정화를 통해 이러한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서서히 일깨워준다. 


이렇게 음식이 중요하기에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예절과 문화적인 장치도 많다. 음식을 먹기 전에 긴 산스크리트어 기도문을 외고 음식을 바르게 주는 방법, 음식을 바르게 먹는 법 등 여러 가지 가이드라인도 있다. 처음에는 까다롭게 느껴졌지만 다 이유가 있고 나에게 이롭기에 이제는 자발적으로 따르고 있다. 


식사 전 산스크리트어 기도문을 부르는 중. 수행자뿐만 아니라 방문객, 자원봉사자들도 다 같이 부른다.


음식은 주로 인도 요리이지만 호주에 위치한 사원이기에 가끔 파스타, 케이크 등 서양 음식도 나온다. 보통 쌀밥, 콩 수프(달dahl), 야채 커리(섭지subji), 납작빵(짜파티capati), 야채 튀김(파코라pakora), 소스(처트니chutney)가 기본 메뉴이다. 인도 요리의 좋은 점은 소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물론 튀김이나 디저트는 제외하고) 인도요리의 특징은 재료를 천천히 푹 익히기에 부드럽고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소화를 돋운다. 


사원 저녁 메뉴. 이날은 특별하게 중국인 수행자가 요리하여 중국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 수행이다. 앞서 말했듯이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의식이 깃들기에, 네 가지 금계와 명상 수행을 일정기간 동안 실천한 사람들에게만 요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요리는 수행하는 마음으로 임하는데 중요한 것은 신에게 먼저 바쳐야 하기에 그전까지 절대 맛을 보지 않는다. 간도 안 본다! 그래서 레시피를 따르는 게 필수다. 보통 레시피대로 하면 맛을 보지 않아도 잘 완성된다. 요리하는 동안 지켜야 하는 청결 수칙도 있다. 예를 들어 손으로 얼굴이나 머리카락을 만지면 안 되고, 만지는 즉시 손을 씻어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규칙들도 처음에는 번거로웠지만 좋은 이유이니 따르기로 했고 나중에는 밥 먹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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