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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란 Jun 17. 2024

봉사가 밥 먹여주나요? 네!

본격적인 사원 생활

아쉬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처음에는 청소만 하다가 점점 주어지는 일이 다양해졌다. 이곳에서는 사원에서 하는 일을 봉사(서비스)라고 부르는데, 수행 경험이 쌓일수록 봉사의 영역도 더 넓어진다. 사원에서 의식을 치르거나 신상 숭배, 경전 가르치기 등의  종교적인 봉사 외에도 홈페이지 관리, 방문객 안내, 사원 가게 일, 커뮤니티 잡지 발간 등 실용적인 봉사도 있다.


당시 인상 깊었던 봉사는 신상神像에게 바치는 화환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사원 신상에게 쏟는 노력은 정말 어마어마한데, 신상을 신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늘 최고를 바치고자 노력한다. 신상이 무엇일까? 신은 완전히 영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의 물질적인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의 눈으로 와이파이 신호를 볼 수 있는가? 자외선은? 바람은? 공기는? 이런 물질적인 것들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데 하물며 귀신이나 영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우리의 시각 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에  신이 자비를 베풀어 특정 재료로 특정 모양의 형상을 만들면 우리의 숭배를 받아주기로 마련한 것이 신상 숭배이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신상을 만들고 절차를 지어낸다고 신이 우리의 숭배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신이 원하는 대로, 즉 경전에 나와있는 대로 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화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언덕 꼭대기 사원에서 바구니를 들고 꽃밭으로 총총 걸어 내려가서 직접 꽃을 딴다. 밀짚모자에 사리를 입고 꽃을 따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아리따웠다. 그 뒤 실과 바늘로 이 꽃들을 엮어서 화환을 만든다. 신에게 바치는 여러 가지 공양물 중에서 꽃은 최고로 손꼽힌다. 그래서 직접 기르고 딴 꽃으로 엮은 화환을 매일 빠짐없이 바친다. 


화환을 만들기 위해 직접 딴 꽃들
완성되어가는 화환


신을 깨닫는 방법으로 명상과 경전공부 외에도 사원 봉사활동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물질계에 있는 한 우리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서 신을 기억하는 것이 박티 요가의 수행법이다. 사원 봉사는 특히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신을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사원 청소, 공양물 만들기, 공양물 바치는 의식 진행 등 신상 숭배 위주의 활동으로 고안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사원 봉사만으로 신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무직이나 현장일이나 농사일도 신을 위해서 행하면 그 일이 영성화되고 숭배가 된다. 이게 박티 요가의 묘미이다. 수행을 위해 출가를 꼭 해야 하거나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같은 일을 계속하면서 그 정신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여러 가지 알바일을 하고 있었을 때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그렇게 괴로웠고 일을 하면서도 5분 단위로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알람을 설정하지 않아도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사원에 가는 게 설레며 수행과 봉사만 열심히 하면 밥과 집과 옷이 그냥 주어졌다. 그렇게 걱정 없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늘 감사했다. 그러다가도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친구들, 가족, 주변인들이 떠오르면 나만 이렇게 누리고 있는 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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