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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May 09. 2018

포스터

추억이 담긴 작업을 되돌아보며.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비핸스를 너무 내버려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이전에 어떤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 만들었던 포스터 작업을 정리하여 비핸스에 업로드하였다. 그 전시의 주제는 '작품으로서의 포스터'였고, 아래의 작업 과정이 나의 그 대답이었다. 주제 자체를 우회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이 주최 측의 마음에 별로 들진 않았는지, 경쟁을 뚫고 전시에 걸리진 못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요즘들이 이 작업이 자꾸 생각나고, 만들 때 참 재밌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포스터 만들기를, 또 포스터라는 매체를 무척 좋아했던 내게, 어느 날 문득 포스터들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환멸의 대상으로 쓰레기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거리를 나뒹구는 쓰레기가 되었을 때를 말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학교를 다닐 적에 친한 선배 형이 했던 말이다. 비 오는 날 흠뻑 젖은 채로 거리를 나뒹구는 쓰레기가 된 포스터들을 보며 '야, 저 포스터들 참 흉하지 않냐? 어차피 저렇게 될 걸 우리는 뭣하러 이런 걸 열심히 만들어 대는 걸까? 참 웃기다 그렇지.'라고 자조를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었던 직후에는 나도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배우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어쩌면 나에게 삶의 때가 늘어날수록, 그 말이 점점 더 와 닿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결국 쓰레기가 될 무언가를 왜 그렇게 만들어 대는 걸까?' 이러한 생각을 하던 와중 지나던 택시 승강장의 기둥이 테이프로 지저분한 광경을 포착했고 어느새 내 카메라를 꺼내 그 광경을 찍게 되었다.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느낌들을 저 사진과 함께 포스터로 만들었다.


많은 인쇄물들의 종류들 중에서, 포스터만을 예로 들자면... 실제로 포스터를 길거리에 붙이려고 밖으로 나가보면 특별히 붙일만한 곳이 없다. 내 말은, 붙이는 것이 가능 한 곳이 몇 군데 없다는 말이다. 현행 법 상 포스터를 붙일 수 있는 곳은 허가를 받은 게시판 같은 곳 외에는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거의 모든 포스터들은, 즉 인쇄광고물들은 거의 다가 불법이다. 쓰레기다.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혁명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과는 아주 상반된 모습이다.(포스터 따위 만들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준법에 가까운 것이다! 허참...) 그들 또한 사회에 나와선 급한 대로 친구 명함이나, 가게 찌라시, 웹상에 올려질 상품 페이지를 디자인하기 바쁘다. 어떤 매체의 콘텐츠를 포장하는 이들의 마인드가 이리도 쉽게 흔들리는데, 어떻게 위대한 포부를 담은 프로파간다 따위가 그 종이에 담길 수 있으랴.


이러한 시대상황 속 '포스터'라는 평면 매체의 슬픈 상황... 같은 서글픈 느낌을 그때는 이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써놓았지만, 그때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나 성찰을 해낸 것처럼 신나서 만들었던 포스터였다. 분위기에 맞는 글자를 그리거나, 공예적인 스타일로 시각적 즐거움이 많을만한 포스터를 만드는 걸 좋아한 적도 있지만, 어느덧, 딱 내가 편하게 만들면서도 스스로 즐거워질 수 있는 작업 또한 찾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단순히 공이 많이 들어간 작업보다 심미성이 조금 떨어질 지라도 형태와 내용이 이루는 서사방식이 재밌는 작업이 더 좋아졌는데, 과거 작업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딱 그러한 작업물이었던 이 포스터를 찾아서 생각에 잠긴 순간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재밌는 작업. 그런 작업이 요즘엔 좋다.


아직도 저런 '우리가 만드는 것들은 ~ 결국 다 쓰레기~' 시선에서 헤어 나오진 못했다. 아직도 고민한다. '이렇게 맘 편하게 종이 위를 누비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남아있어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요즘 많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다루는 액정이라는 매체 또한 더 나은 어디에 도달할 수 있는 중간 단계 같은 느낌이지, 완전한 정답 같진 않다. 물론 마지막에 도달할 어딘가 자체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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