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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May 06. 2018

입사

입사 후 첫 E mail을 전송하던 순간

2018년 1월 26일에 쓰인 글입니다. 




새롭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 사춘기 때의 감성으로 들었을 노래라면 한번 들었을 뿐일지라도 눈물이 고일 정도의 감동을 느꼈을지도 모를 노래들이 지금은 여러 번을 들어야 어느 정도 감성에 젖곤 한다. 그럴 땐 나도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 때가 묻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퍼진다. 


취직을 했다.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몇 주 정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직접 해보았다. 아주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많이 낯설었다. 면접날 입고 갔던 정장만큼이나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나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나의 모습이 놀라웠다. 취직을 한 지 2주 하고도 반주 정도가 지난 즈음이었나. 나의 회사 이메일이 제공되어서 다른 직원들에게 간단한 인사 메일(?)을 쓰도록 지시받았다. 그래도 나름 글쓰기에 애먹는 타입은 아니었던 터라 어렵게 생각되진 않았다. 일기를 쓰듯 솔직히, 의식의 흐름대로 줄줄줄 써 내려갔다면 분명히 내 마음에 쏙 들었겠지만, 예시로 들어준 다른 신입사원의 인사글은 뭐랄까, 하면 안 되는 말들을 다 빼고 용건만 간단히 쓴 느낌이었다. 그 글을 보고 내 마음대로 쓰기는 불가능하겠구나 싶어서 적당히 비슷하게 해서 보냈다. 처음 자소서부터 시작해서 면접, 인사, 이메일까지 업무의 방식을 알아간다는 것은 점점 '나다움'을 버려가는 작업 같았다. 


그 이메일을 쓰고 나서 왈칵 슬퍼졌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간단명료한 용건 전달. 행여나 무례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는 단어 선택은 피하기. 마치면서 항상 감사합니다를 붙일 것... 뭐 이런 것들을 지키며 메일을 쓰다 보니 슬퍼졌었다. 정확히 어떤 것 때문에 슬퍼졌었는지 불명확하지만, 아마도 더 이상 학생 때만큼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 그랬던 거 같다. 살아가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모질 이 짓도 많이 하던 편이라 항상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이때만큼은 나의 과거가 그리웠다.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고, 농담도 맘껏 하고, 가벼워 보이는 언행, 단어 선택도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편이라면 실컷 내뱉을 수 있는 학생 시절이 정말 좋았던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을 행동들을 절대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듣고도 뭔가 설렘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다움을 많이 버리는 연습을 한 것 같았다.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해 훨씬 더 나답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많이 무뎌져서 그것이 슬프지도 않게 된 거 같았다. 노래를 들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어진 것처럼. 그래서 왠지 조금 슬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던 듯하다. 


돈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일들이 더 많아져야만 하는 걸까. 모르겠다. 무뎌지고 무뎌져서 무뎌졌다는 사실조차 인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 이 생각에 미치자 별로 슬프진 않았다. 그때는 적어도 상처받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이 다행인 걸까?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섬세함을 상처가 되더라도 괜스레 계속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섬세함이라기보다 청승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나를 계속 들여다보아야겠다. 




'디자이너의 순간'은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미묘함을 담습니다. 

꼭 제가 쓴 글이 아니더라도, 어떤 '순간'을 느끼셨다면 이 매거진에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재밌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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