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협업'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할 때부터, 팀으로서 무언가를 해보는 것보다는, 개인으로서 뭔가 해보는 것을 선호해왔다. 태생부터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 그래서였을까. 어쩌다 한번 해본 팀 작업도 결과물이 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시절 어쩌다 한번 했던 인포그래픽 조별과제에서도 다른 팀들에 비해서 그리 크게 두각을 내지 못했다. 그 후로도 내가 했던 작업들은 모두 혼자 진행했던 것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다 두 번째 취업을 하고 나서야 협업다운 협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회사에서의 멤버는 디렉터 한 명, 시니어 디자이너 한 명, 브랜드 디자이너로서는 신입인 나와 그에 비슷한 수준인 동료를 포함하여 두 명, 총 4명이다. 이렇게 꾸려진 팀에서 두 명의 막내는 참 많이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디렉터 분과 시니어 디자이너분의 조력과 배려가 아니었다면 이런 프로젝트들을 감히 어떻게 진행하지 못했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협업을 해보면서 드는 생각은. 실무에서 진행하는 협업이 대학시절 해오던 조별과제의 근본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직급과 직책이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 큰 차이이고, 우리 팀의 규모가 크지 않아 무임승차하는 인원이 있진 않다는 점이 다행이겠지만. 이 정도와 과제의 규모가 크고, 기한을 못 맞추면 학점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페이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제하면 조별 과제의 큰 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실무에서 협업을 해보니 몸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확실히 손이 여럿이니, 처리 가능한 업무의 양이 커지고 많아진다는 것이다. 덩달아 느껴지는 단점은, 늘어나는 손만큼 머릿 수도 늘어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 것. 학교 조별과제에서도 진행하다가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실무에서라고 다르진 않았다. 다만 직책이 나누어진 상태에서 잘못 소통되어 일을 그르치면 시간과 비용에서 손실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조별과제에서 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까이게 되니, 결과적으로 업무에 더욱 높은 수준으로 집중하게 되더라. 그리고 역시 공통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그리 많은 노력을 하고 대비를 하여도 생각지 못한 변수와 고통이 너무 많다는 것!
다행히도 단점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과정들을 겪고 나서도 협업으로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의 절대량 차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태 개인작업을 해오면서, 재밌는 무언가를 기획해 놓고서도,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해오기도 하였지만, 혼자 해야 할 작업의 양이 너무나 방대하여서 진행하다가 지쳐서 중도에 그만두는 경험도 많았다. 협업을 한다는 선택지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차이를 느끼고 나서 아차 싶었다. 나는 왜 그리도 고독하게 혼자 무엇을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을까.
결국 내 인간관계 성향의 한계를 말하게 돼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만. 지금이라도 협업, 팀 플레이의 위력을 실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