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최근에 어떤 책을 읽다, '연'에 대해서 써놓은 어떤 글을 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 인연. 글쓴이가 말하길, 연이 다하여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들은 나에게 그들의 유언이 된다는 것. 이 문장쯤을 읽는데 마음이 참 먹먹해졌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어땠나. 그들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의 유언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남긴 유언들 대부분은 '잘 가' 이거나, '또 보자' 일 듯하다.
'또 보자'
그의 마지막 유언이 '또 보자'였다는 걸 떠올리면 참 슬프다. 다시금 보면 좋을 텐데라는 의미가 담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정말로 멀리멀리 떠나버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말이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버려 볼 수 없게 되거나, 나의 어떤 점이 싫어 다시는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로 내가 상대방이 싫었던... 어찌 되든 많이 생기기도 했다. 연이란 게. 많이 끊기기도 했고.
연이 다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 사람들. 미련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까움이라 해야 할지. 이런 게 그리움인 건가 싶기도 하고.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좋은 결말로 매듭짓지 못한 사람들도 한 번씩은 그리워진다는 것. 정말 정말 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더라도, 악의 섞인 호기심에 한 번쯤 언급이라도 될라치면, '그 인간 뭐하고 살고 있으려나?' 하고 내뱉게 되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 게 인간인 걸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란 사람은... 이유야 여기에서 다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특히 좋지 않게 끝난 관계들이 많다. 대판 싸우고는 연락두절! 이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서는 아주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클리셰로서 아주 잘, 너무나도 잘 작동해주었다. 이것은 맥거핀이다!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고도 했었지만, 어김없이 뻔한 클리셰가 등장하곤 했다.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이전의 여러 가지 경험들에서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두 번째 겪는다고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나 나 같은 사람은 같은 덫에 몇 번씩이나 잘 걸려 넘어지는 편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라고 학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거나, 혹은 아주 적당히 잘 끊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이나 신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은 채로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보겠다는 시절이 있었다. 뭐, 어찌 되었건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사람들을 아주 다양하고도 세분화된 방식으로, 옛날보다 훨씬 능숙하게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것들이 뻔하디 뻔한 클리셰였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새로움은 줄어들었고, 나의 이상도 편견이라는 것에 무너지는 듯하다.
나라는 인간도 참 어렵게, 어렵게 변해가는구나 싶고.
이제는 내가 들었던 유언들보다, 내가 했던 유언들을 좀 더듬어보게 된다. 나는 어떤 말들을 뱉었더라. 이미 볼 수 없게 되어버려, 되새겨봤자 나에게만 덩그러니 남은 몇 자의 단어들 뿐이려나.
어디서 봤던 말처럼, 결국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는 걸까.
그러면서도 결국 모두가 단절되어 있는 듯도 하고.
고독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거부하려 만들어대는 관계들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