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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Jan 08. 2019

취미

나의 취미 한가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될 즈음에, '아 이렇다면 이대로는 오래 버티기가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그때는 맛보기였다. 정확히까지 기억하기는 좀 그렇다. 인턴 할 때인가, 어딘가에서 파견 나가서 알바를 할 때였나... 말로만 야근으로 찌들어 있다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접해봤을 때인 것은 확실하다. 밤을 지나 새벽이 되어 어둑어둑함이 절정에 달할 때, 마침 담배가 당겨 한대 피우고 있을 때면 분명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게 뭐 있었더라. 나한테 취미가 있었나. 취미라고 할만한 것 없이 살아왔구나.

대학에 있는 동안 디자인이 가장 즐겁고 재밌는 것이었는데. 생계로서 디자인을 대할 땐 정말 낯선 존재가 되더라는 것. 일로써 디자인을 몇 번 해보고 나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때 포기도 잘하고 우유부단하던 내가 '이 일을 때려치워야 할까'와 같은 회의적인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은 나조차도 놀랍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그 진지한 고민은, '(디자인 말고) 내가 순수하게 즐겼던 것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에서라도 그 즐길만한 소일거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였다. 단순히 말해서 그때, 그 순간은 20년 조금 넘게 살면서 취미 하나 없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던 시절이었다. 


뭐 그런 과정들이 있었지만. 원체 내성적이고 새로운 짓거리, 안 하던 짓거리를 하길 워낙 두려워하던 성격 때문에, 과감하게 새로운 레저를 즐기러 떠난다거나, 그런 극적인 전환은 없었다. 그러나 취미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취미를 가지고 나서 보니, 취미라는 것이 대단한 어떤 걸 나는 한다는 것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손 닿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나의 취미는 '글쓰기'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네가 무슨 글쓰기냐, 작가냐 이러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문장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시집까진 아니어도, 산문집, 에세이 또는 소설의 아름다운 문장들에게 감동을 많이 받곤 한다. 이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대학입시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단순히 우울했던 하루를 글로 덜어내어, 나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목적이었다. 하루하루 일기장에 나의 우울을 기록 해나는 것은 나의 감정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우울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슬픔은 되도록 잊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한 상상을 해야 삶의 기운이 생겨나는 법이다. 그 시절 나를 지금 회상하자면... 내가 무엇 때문에 슬픈지 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때 나는 너무 슬픈 기억들만을 글로 남겨놨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썼던 글을 읽고,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더 슬퍼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의 어떤 사유를 어딘가에 남겨놓는 행위이다. 어딘가에 남기게 된다는 말은, 누군가 그곳에 들러 당신의 기억과 감정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를 취미로 들인 지 3-4년 정도 되었을까. 여태까지 썼던 글들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고, 깡그리 다 지워보기도 했다. 매번 쓰던 블로그에 써보다가도, 한 번씩 찾지도 않을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도 하루의 감상을 적어보곤 했다. 사실 이런 행동은 의미 없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해 본 짓은 아니고, 일부러 한 것이다. 그런 걸 써봤자, 누가 읽을까.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참 오글거리고 창피한 행동이다. 그런 짓을 몇 번 해보기도 하였지만, 당시엔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왜 나에게 보여주는 걸까' 싶은 행동이었고, 아직도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곤 한다. 최근에서야 이런 소통의 창(블로그, 브런치)을 만들고 조금씩이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지금에서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담은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고, 사실 그 시절 내가 써놓은 글을 봐주길 바랬던 어떤 독자는 사실 글을 썼던 '나'였다. 자기가 써놓은 글을, 꼭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흔적을 먼 미래에 발견하였을 때의 그 느낌과 감정은 참 특별했다. 과거의 경험과 감정의 기록으로서의 글을 읽어나갈 때의 생경함은 누구나 한 번씩 겪어보는 좋은 경험 이리라. 단적인 예로, 다 커서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하는,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들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는 재밌는 일이 아니었던가. 


내가 썼던 글들을 까맣게 잊은 채로, 그 글의 첫 독자가 되는 기분은 아직까지도 참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시작으로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아직 아마추어이고, 취미 정도이다. 장래에 전문적으로 글을 쓸 생각도 없다. 디자인을 할 때처럼, 이것으로 뭔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나 야망도 없다. 그저,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써놓은 생각의 단초들,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나가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글쓰기,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은 있어야겠다는 마음에, 최근에는 남들과 같이 볼 수 있을만한 글을 조금이라도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혹시 알까, 누가 나의 글이 마음에 들어, 작은 책자라도 한번 내보자고 제안해 올지. 이 단계에서 벌써 이런 행운 따위를 바라는 것부터가 욕심 없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일까.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즐겁게 글쓰기를 하고 있다. 




최근 1년 정도는 취직을 하고 익숙해지니 비슷한 나날들이 반복되어서 글로 남길만한 소재가 부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 쓰는 것을 아예 관두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엄청난 악필이라 글을 쓰려면 타자를 두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식 키보드에 빠졌다. 원래 관심 있던 물건이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니 몇 개 정돈 살 여유가 생겨서 사보다 요즘엔 타건하는데 푹 빠져 지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글을 쓰게 된다. 누군가는 한심하다 할 수 있겠다만, 그래도 여타 취미들보다는 비교적 저렴하고, 건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글 쓰는 게 좋은 것인지, 기계식 키보드 타건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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