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콘텐츠의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 전략
하루에도 수많은 게임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지만, 유저들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는 한정적이다. 기술의 발전과 디바이스의 변화로 게임의 그래픽은 더 화려해졌고, 스토리는 더 복잡해졌다. 이러한 전략은 게임 콘텐츠의 전체적인 퀄리티 향상과 충성 유저들의 만족감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며, 크리스텐센이 주장한 ‘혁신’의 관점에서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을 이끈다.
그러나 시장에서 대부분의 혁신은 ‘존속적 혁신’보다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발생할 때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파괴적 혁신은 ‘저가 시장’에 진입하여 기존 시장에서 제공되는 것보다 ‘저렴하고’, ‘단순한 성능과 편리함(편의성)’을 강조할 때 발생한다.
<저니>와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는 가격은 무료(광고 기반, 프로모션) 또는 저렴한 금액을 취하고, 내용면에서도 복잡한 대작 콘텐츠와 달리 ‘단순하고 쉬운’ 전략을 택했다. 그런데 게임 매니아들에게는 너무 쉬워서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단순한 기능과 설정임에도, 두 작품은 모두 유저들의 높은 지지를 얻으며 순항 중이다. <저니>는 발매 후 10년 넘게 ‘최고의 힐링 어드벤처 게임’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는 발매 1년 남짓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역시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초보 입장에서 분석해봤을 때, <저니>의 스토리텔링 특징은 '동료애'와 '연대감'이었다. '함께 하는 게임'인데도 채팅과 대화 기능이 전혀 없는데, 플레이하는 동안 강력한 동료애를 느낀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흔히 언어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소통'의 개념을 비언어적으로 풀어낸 <저니> 제작진의 영리함에 새삼 감탄했던 순간이었다.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는 정반대로 '언어적 요인들'이 차고 넘치는 콘텐츠였다. 대사, 채팅, 상황설정, 상황 선택 등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과정마다 '텍스트' 기반의 언어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여기까지였다면 자칫 글로벌 확장에 제약이 컸을 수 있다.
그러나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요인들은 다른 장르 이야기의 결합(오마주, 패러디 등)을 통해 플레이어가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스토리의 진행과 결말이 궁금해지는 호기심 유발 전략을 사용했는데, 여기에 이 게임의 장르를 '추리'로 설정함으로써 '호기심'의 강도는 더욱 커지도록 설계한 것은 기획단계부터 '몰입'을 고려한 제작진의 전략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 두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특징을 바탕으로,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몰입 요인들이 있을까를 고민해보았다. 게임 매니아 또는 게임 헤비 유저들 관점에서는 뻔한 결론일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이제 막 게임 콘텐츠를 접하거나 게임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 또는 두려움이 있는 초보자들께는 부디 동의가 되는 내용이면 좋겠다.
왕초보 유저로서 필자가 분석해본 4가지 몰입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것은 ‘쉬운 스토리’ 전략으로 ‘몰입’을 높였다는 것이다. 충성도 높은 헤비 유저(Heavy user)가 아니라, 이제 막 게임시장에 진입하는 ‘라이트 유저(light user)’ 또는 ‘초보 유저(beginner)’들까지 포괄하는 전략으로 콘텐츠의 ‘시장 파이’를 키운 것이 주효했다.
둘째,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점도 ‘몰입’에 영향을 주었다.
<저니>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대사와 텍스트 등 ‘언어적 요소’를 모두 없앤 ‘논버벌’ 방식을 채택했으며, 대신 비주얼과 음향 퀄리티를 높임으로써 텍스트가 부재한 자리를 채웠다.
반면 텍스트 기반의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은 됐지만, 대신 영화, 소설 등 너무도 익숙한 다른 장르들과 융합시킴으로써 문화권이 다른 유저들이라도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문화적 제약을 극복했다. 시장 확장 관점에서 접근한 전략이겠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모든 문화권의 유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요인들을 적용한 것이다.
세 번째로, 두 콘텐츠 모두 ‘연결’의 가치가 강조되는 것도 유저들의 몰입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쳤다. 2년 반 가량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중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연결’이 되었다. <저니>에서 동료와 같이 플레이하는 동안 쌓아가는 ‘연대감’과 ‘동료애’, 그리고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에서 극중 캐릭터들과 채팅을 하면서 작품 속 인물들에게 갖게 되는 ‘친밀감’은 유저가 두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연결감’을 느끼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가격 전략이다. 두 작품 모두 저렴한 가격 또는 광고 기반의 '무료' 전략으로 유저들의 가격저항선을 낮추었다. <저니>의 경우, 10년 넘게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지쳐있는 유저들을 위로한다는 명목하에 '무료 프로모션'을 진행함으로써 또 한번의 티핑포인트를 만들었고 사회적 이미지도 높이는데 성공했다.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의 경우, 유료와 무료로 앱을 제공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무료로 플레이하던 유저들도 게임의 재미를 붙이면서 '유료앱'을 다운받는 전환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격, 프로모션, 디자인, 플랫폼, 발매시기, 시장 현황 등 여러 비즈니스 요인과 글로벌 시장 전략, 타겟, 제공 가치 등 다방면의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제나 ‘제품’ - ‘게임 스토리’일 것이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여러 가지로 평가할 수 있지만, 결국은 향유자가 얼마나 ‘몰입하느냐’로 귀결된다. 아무리 내용이 복잡하고 촘촘해도 ‘몰입’이 어려우면 좋은 스토리가 아니다. 반대로 단순하고 허술해보여도 ‘몰입’을 끌어낼 수 있으면, 그 이야기는 향유할만한 가치를 지닌다.
<저니>와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는 단순한 설정과 스토리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게임 왕초보인 필자 입장에서 ‘몰입’을 최대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콘텐츠였다. 동료애와 연대감, 친근함과 호기심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어떤 연령층에서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감정이다. 두 콘텐츠의 이러한 스토리텔링 특성은 결과적으로 두 콘텐츠의 ‘확장성’을 높이며 경쟁이 치열한 게임시장에서 성공적인 IP로 자리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니>와 <살인저택의 부다페스트>, 두 게임콘텐츠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