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방송영상 트렌드 & 인사이트 2023.7월호
본 글은 한국 콘텐츠 진흥원 (KOCCA)에서 발행한 <방송영상 트렌드 & 인사이트> 2023년 7월호에 실린 원고의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KOCCA 기고글은 오랜만이네요. 제안해주신 KOCCA 김상현 본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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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환경이 OTT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영상 콘텐츠 시장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TV 채널과 OTT에서 신작 오리지널이 쏟아지다보니, 영상을 많이 보지 않던 사람들도 일상에서 수시로 영상 콘텐츠를 접한다. 덕분에 이제는 ‘콘텐츠’를 ‘필수재’처럼 소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콘텐츠 절대량의 증가는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을 확대시켰을 뿐 아니라, 출연자, PD, 작가 같은 전문 인력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콘텐츠 양의 과도한 증가는 이용자들에게 ‘선택의 문제’를 발생시키며 오히려 시청을 어렵게 하는 문제도 야기시켰다. 과거 TV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시청하던 시절에는 시청자들이 ‘본다’ 또는 ‘안 본다’만 결정하면 됐었지만, 이제는 시청행위를 결정하기에 앞서 ‘시청대상(what content)’을 결정해야 하는 변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다보니,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시청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시청행위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고민을 제시한다.
‘요약본’ 시청이 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요약본’은 초기 영화, 웹툰, 소설, 뮤지컬 등의 리뷰 영상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방송 기준으로 개별 에피소드를 20~30분 내로 압축한 버전부터 프로그램의 전체 에피소드를 1시간 남짓으로 압축한 버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예능 등 시청 분량이 긴 장르일수록 요약본의 수요와 공급은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요약본의 인기로 현대인들의 삶이 ‘바빠진’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편당 1시간 분량으로 12~16부작으로 구성되는 보통의 한국 드라마를 다 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720분 이상이라고 하면, 1시간가량만 보면 되는 요약본은 시간 절약에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결말까지 보여주는 요약본들이 많아져서 본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요약본 소비의 증가 이유가 단순히 ‘시간 절약’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나스미디어의 2023년 인터넷 이용행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온라인 동영상 시청은 팬데믹 시절과 거의 비슷할뿐더러, 심지어 3040대에서는 시청시간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간이 있더라도’ 요약본을 소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요약본 시청이 증가하는 보다 본질적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요약본 콘텐츠를 소비할까?
온라인 환경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본방사수’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넷플릭스가 등장하기 이전인 20세기 말~21세기 초의 닷컴 열풍이 불던 시절부터였다.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의 등장은 시청자들이 TV 편성 시간에 맞춰 ‘기다리던’ 시청 패턴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는 영상 콘텐츠를 ‘경험하는 속도’에 대한 대중의 관성을 바꾸었다.
‘기다림’을 요구하는 TV 매체와 다르게, 온라인은 원한다면 ‘지금 당장’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즉시성(immediacy)’과 ‘편의성(Convenience)’을 제공한다. 온라인 환경이 ‘빠르고 편하게’ 시청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 덕분에, 이제 신규 콘텐츠가 첫 방을 시작할 때의 기대감 속에는 해당 콘텐츠의 결말을 ‘기다리는 과정’이 포함되지 않게 된 것이다.
콘텐츠를 시청할 때 내가 ‘몰입하고 싶은 부분’으로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음을 학습한 이상, 이용자들의 콘텐츠 경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기 마련이다. 온라인이 주는 ‘빠른 시간’과 ‘즉시성’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이상 지루한 ‘기다림의 과정’을 감내하면서까지 본방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온라인 경험의 누적은 ‘요약본’으로 내가 원하는 재미 요소를 ‘빠르게’ 확인해보고자 하는 시청 동력이 된다.
온라인 환경이 대중에게 영상 시청 경험의 ‘속도’와 ‘즉시성’의 경험을 제공했다면, 유튜브는 ‘요약본’ 시청 문화를 본격적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시청 기준 및 그에 따른 콘텐츠 시청습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23년 4월 기준으로, 유튜브의 국내 이용 점유율은 무려 91.8%에 달한다. 이는 넷플릭스(59.6%)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다(나스미디어, 2023).
유튜브가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UGC: User Generated Content)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유튜브는 TV 콘텐츠까지 흡수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튜브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콘텐츠는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이다. 나스미디어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전년보다 감소하긴 했지만 2023년 현재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콘텐츠는 여전히 1인 크리에이터 영상(34.1%)이었다.
편차는 있겠지만, 크리에이터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약 20분 이내의 분량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영상 제작 주체가 온라인의 속성인 ‘속도’와 ‘효율’의 시청패턴을 체득한 유저들임을 고려하면, 크리에이터 영상 콘텐츠 길이는 유튜브 환경에 최적화된 분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용자들은 이들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소비해오면서, 기승전결의 전개가 유튜브형 영상 분량(20~30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적응’해왔다.
그렇다보니 ‘유튜브 네이티브’ 세대인 1020대는 짧은 콘텐츠 길이에 익숙해진 덕분에 ‘긴 호흡의 영상’을 소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이들에게 10~20분 가량은 부담없으면서도 몰입하기에 충분한 분량이다. 과거 1시간 이상의 방송 프로그램을 보던 세대의 시청행위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즉, ‘풀버전=완전한 시청’이라는 시각은 과거 TV로 시청 분량을 학습했던 기성세대들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일 뿐, 유튜브 세대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개념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튜브 포맷에 익숙해진 세대들이 증가하는 만큼, 앞으로는 ‘요약’ 콘텐츠의 소비가 매우 당연하고 필수적인 시청 행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는 최근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숏폼’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다시금 유저들에게 영상 분량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2020년 선보인 유튜브 숏폼 서비스는 국내에서 2021년에 도입된 후 2023년 2월 ‘광고모델’이 적용되면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숏폼 시장을 개척한 것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이지만, 전 세대가 이용하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볼 때 유튜브의 숏폼 시장 참전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는 유튜브 생태계 환경에서 유튜브 정책에 맞춰 이용자들의 새로운 시청 습관이 형성되고 학습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의 요약본 시청은 지금보다 더 짧아지거나, 짤방, 밈(meme) 수준의 핵심 장면만 시청하는 패턴이 정착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결합된 전통적으로 ‘영상’ 콘텐츠는 전통적으로 ‘린백(lean-back)’ 형태의 수동적 행위에 의해 시청이 이루어졌다. 고도의 몰입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제공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콘텐츠 ➞ 향유자’의 일방향 구도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쌍방향성을 지니는 온라인 환경은 ‘능동적 시청’ 욕구를 강화시키며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많은 영상 플랫폼들이 추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개인화’가 중요한 시청 요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추천’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라서(메조미디어, 2022), 시청할 콘텐츠 선택을 돕는 다른 수단이 필요해졌다. 즉, ‘요약본’ 시청이 증가하는 것은 추천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해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선택하기에 앞서 ‘사전학습’ 수단으로서의 시청 수요가 커지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용자들은 요약본 통해 본편 시청할 콘텐츠를 결정한 후, 이용자들은 OTT, 채널 등에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시청한다. 또한 이용자들은 본편을 시청할 때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속도와 분량에 맞춰 시청하는 것은 물론, 콘텐츠의 스토리 또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간다. 가령 스킵버튼을 통해 유튜브 요약본으로 학습한 장면과 매칭되는 구간부터 확인하거나, 해당부분을 이끄는 복선을 복습하는 등 원하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시청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볼때, 배속시청, 빨리감기, 되감기 등의 행위를 통한 ‘비선형적 시청’은 수동적으로 이루어졌던 영상 시청을 ‘내 취향에 맞게’ 능동적으로 소비하겠다는 향유자들의 욕망이 발현된 결과다. 요약본 소비 시대의 본편 시청은 요약본 시청과정에서 서사구조, 캐릭터, 출연자, 장르, 작가 및 연출진, 영상미, 음향, 대중의 평가 등 다양한 몰입요소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결과론적 행위인 셈이다.
‘요약본’ 소비 행위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요약본’ 소비는 영상 시청의 당연한 흐름이자 패턴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미 방송사와 OTT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다수의 콘텐츠 사업자(CP)들은 자사 오리지널에 대한 ‘요약본’ 제작을 사전에 기획하거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요약본’ 시청을 독려하고 있다.
‘개인’의 부상은 콘텐츠 제작과 소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요구한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시대는 소위 ‘방송’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전문 콘텐츠(RMC)의 소비 행태마저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콘텐츠 제공자(CP)들이 콘텐츠를 제작(produce)하고 유통(distribute)하는 것보다, 향유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콘텐츠를 ‘발견(discovery)’하는 행위가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요약본 시청은 이처럼 온라인 환경이 가져온 다양한 변화와 유튜브로 학습한 적정 시청 분량에 대한 이용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복합적 현상이자, 개인화된 시청 욕구의 충족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요약본 시청은 몰입요소를 찾아 선형적 시청으로 가기 위한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행위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이용자들이 콘텐츠의 완성도와 내용 외에도, 콘텐츠를 선택하기까지의 과정, 시청에 들인 시간과 에너지, 시청의 실제 행위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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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송문화, 2017년 가을호 vol.4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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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판문화,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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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획회의 2021년 10월호, vol.54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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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나스미디어(2023). 2023 인터넷 이용자 조사. https://www.nasmedia.co.kr/NPR/2023/
메조미디어(2022). OTT 업종분석 리포트. 2022 업종 분석리포트, (6). https://www.mezzomedia.co.kr/data/insight_m_file/insight_m_file_1451.pdf
아이보스(2023.2.13), 유튜브 쇼츠는 얼마나 보고 있을까, https://www.i-boss.co.kr/ab-qletter-653381
일요신문(2022.2.23.) ‘스킵’은 선택 아닌 필수…OTT가 바꾼 콘텐츠 시청 패턴, 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23234
한국일보(2022.10.14.). "드라마 왜 다 봐? 요약본으로 충분"...숏폼 늪에 빠진 콘텐츠 시장,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316290001428
Kniazieva, Y.(2022.4.14.). “What Is a Movie Recommendation System in ML?”, Label your data, https://labelyourdata.com/articles/movie-recommendation-with-machine-lea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