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미언니부터 캐리언니까지, 국내 키즈 콘텐츠 캐릭터 변화와 인기요인 분석
본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온라인 웹진인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17년 3호(vol.12)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콘진원 버전은 윤문을 거쳐 원 글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본 글의 파일(인쇄물 편집본)은 콘진원 홈페이지 (http://www.kocca.kr/insight/2017vol12/2017_3_vol12_7.pdf)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짤랑짤랑짤랑짤랑 으쓱으쓱, 짤랑짤랑짤랑짤랑 으쓱으쓱, 쭈욱쭈욱 으쓱으쓱으쓱~~”
80~90년대 아이들은 모두 다 불렀던 노래. 어디 아이들뿐이랴. 어른들도 함께 불렀다. 양대 지상파 채널 MBC와 KBS의 프로그램이었던 <뽀뽀뽀>와 <TV유치원>은 국내 키즈 콘텐츠의 전설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유아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뽀뽀뽀’와 ‘짤랑짤랑’이라는 대히트곡을 탄생시키며 국민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뽀미언니’와 ‘하나언니’에 발탁되는 것은 차세대 인기스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뽀뽀뽀>와 <TV유치원>에 열광했던 아이들은 부모가 되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제 ‘캐리언니’와 ‘허팝형’에 열광한다. 그 옛날 부모세대가 좋아했던 ‘뽀미언니’와 ‘하나언니’처럼, 아이들에게 ‘캐리언니’와 ‘허팝형’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광하는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부모세대의 ‘뽀미언니’나 ‘하나언니’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언니나 형을 좋아하는 현상은 동일한데, 그 언니와 형의 성격이 달라졌다. 예전의 키즈 콘텐츠와 지금의 키즈 콘텐츠는, 그리고 아이들의 ‘언니’와 ‘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키즈 콘텐츠의 인기는 제법 역사가 길다. 급속한 경제발전이 이뤄지던 1960년대부터 1990년 중반까지, 지상파 TV채널들의 주도하에 키즈 콘텐츠 시장은 호황기를 맞았다. 그 시절 TV는 오늘날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20%에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각 방송사는 미취학 아동들의 교육을 담당한 거의 유일한 존재로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제작했는데, 이렇게 방송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시청률이 보장된 때문이었겠지만, 어쨌든 당시 방송사들의 키즈 프로그램의 제작·편성은 방송의 ‘공익성’, ‘공공성’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었다.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을 개척한 것은 TBC(동양방송: 현 JTBC의 전신)채널이었다. TBC는 1960년대부터 <밝은 노래, 고운 노래>, <푸른 동산> 등을 비롯해서 1970년대 <호돌이와 토순이>는 다양한 아역스타들을 배출하며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후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은 1980~90년대 들어 황금기를 맞는다. 1981년 5월, 국내 키즈 프로그램의 상징적 프로그램인 MBC의 <뽀뽀뽀>가 첫 방송되면서,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아 프로그램이었음에도 온 세대가 즐겨보았던 <뽀뽀뽀>는 ‘국민 프로그램’이자 키즈 콘텐츠의 전설이었고, 진행을 맡은 ‘뽀미언니’를 비롯해 ‘뽀식이’와 ‘뽀병이’, ‘뽀동이’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히 ‘뽀미언니’의 인기는 굉장해서, ‘뽀미언니’에 발탁되는 것은 차세대 스타가 되기 위한 필수코스로 여겨질 정도였다.
<뽀뽀뽀>의 엄청난 인기는 타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듬해인 1982년에는 현재의 EBS1채널의 전신이던 KBS3가 <텔레비전 유치원>(현, <딩동댕 유치원>)을, KBS1이 <TV유치원 하나둘셋>을, 각각 3월과 9월에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뽀뽀뽀>와 함께 키즈 콘텐츠의 3대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여 국내 키즈 콘텐츠의 1차 전성기를 이끌었다. 여기에 KBS2의 <혼자서도 잘해요>, <요정 컴미>, SBS의 <열려라 삐삐창고>와 게임생방송 <달려라 코바>, 그리고 EBS의 <꼬마요리사>, <방귀대장 뿡뿡이> 등이 계속 등장하면서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은 급속한 성장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2013년 시청률 하락으로 키즈 프로그램의 상징적 존재였던 <뽀뽀뽀>가 폐지되면서,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은 마이너 시장으로 밀려났다. 온 국민이 어린이 프로그램의 노래를 부르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게 키즈 콘텐츠는 한동안 국민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과거의 인기는 옛 영광일 뿐,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승승장구하던 방송사의 키즈 콘텐츠 프로그램은 2000년대 들면서 축소편성 수순을 밟았다. 1995년 케이블방송의 시작과 함께 다채널 시대가 열리자 지상파 채널들도 케이블 채널처럼 ‘상업화’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상파들이 방송의 공익성 보다 수익성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매력이 있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장르들이 우선시되면서, 8~90년대 키즈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자리는 드라마, 정보성 프로그램 등으로 대체됐다. 거대한 상업화 물결 속에서 키즈 콘텐츠는 가장 인기없는 시간대인 오후 3~4시 편성으로 밀려났고, 급기야 2013년에는 국내 키즈 프로그램의 상징인 <뽀뽀뽀>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뽀뽀뽀>는 시청률과 편성 면에서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보여준다. 80년대 인기 최절정일 때 <뽀뽀뽀>는 매일 아침 7~8시에 방송됐다.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자녀를 깨워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는 그 시간에 방송됨으로써, <뽀뽀뽀>는 온 가족의 알람 역할을 했다. 그 시절 <뽀뽀뽀>는 가족이 함께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취학 자녀 교육을 위한 가장 세련된 ‘시청각 교재’였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맞벌이 가정이 급증한 2000년대 이후,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아이들은 점점 바빠졌다. 어린이집 종일반에 있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조기교육 시기도 빨라졌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이미 2012년도에 국내 미취학 아동 절반 이상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자녀교육에 있어 TV 콘텐츠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의 키즈 콘텐츠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노래하기, 율동하기, 체조하기, 글자·숫자 배우기 등 기존 방식의 종합 교육프로그램은 2000년대 아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훨씬 더 전문적인 내용들이 오프라인(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TV가 전하는 교육내용은 시시했다. 무엇보다 이런 오프라인 공간들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직접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체험’과 ‘경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일방향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TV콘텐츠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방송사들이 아이들의 생활패턴 변화를 고려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처럼 교훈적인 내용만으로 어린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란 불가능했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아이들의 볼거리가 많아졌다. 키즈·애니 전문 채널만 10개 이상이고, 2010년대 이후에는 스마트폰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언제든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었으나, 방송사들은 키즈 콘텐츠의 새로운 포맷 개발에 실패했고, 결국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핑크퐁>, <허팝TV> 등 프로덕션 스타트업 또는 1인 창작자 등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에게 키즈 콘텐츠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TV가 놓친 키즈 콘텐츠 시장을 다시 부활시킨 것은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다. 2016년 말 유튜브 발표 자료를 보면, 2016년 키즈 콘텐츠 채널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6년 11월 기준으로 글로벌 구독자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국내 유튜브 채널을 분석한 결과, 어린이를 주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의 시청시간이 전년 대비 95% 증가했고,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성장한 국내 채널 20위중에 8개 채널을 키즈 관련 채널이 차지했다. 2015년 11월 24일~2016년 11월 23일). 불과 2~3년 전만해도 K-Pop 채널이 휩쓸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다.
콘텐츠 장르의 인기 범위도 다양해졌다. 전통적인 강세였던 애니메이션과 언박싱 콘텐츠 외에, 장난감 놀이, 실험, 영어노래 등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인기도 오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국내에서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허팝TV> 같은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는 채널이 인기다. 이들 채널들은 구독자수가 각각 155만, 159만으로, <뽀로로>, <핑크퐁>, <콩순이>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운 채널군과 양대산맥을 이르며 키즈 콘텐츠 시장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그 결과, 유튜브에서 시작된 키즈 콘텐츠의 인기는 2017년 들어 타플랫폼으로 급속히 확장되는 중이다. IPTV 3사는 각자 키즈 콘텐츠 전용관을 통해 키즈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주력했고, 네이버는 전통적인 ‘주니버’ 서비스에 이어, 초등생 대상의 교육용 콘텐츠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였으며, 카카오는 글로벌 서비스인 ‘카카오키즈’를 런칭하여 한중일을 대표하는 키즈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는 글로벌 사업자도 가세했다. 유튜브가 2017년 5월에 키즈 전용앱인 ‘유튜브 키즈’를 선보였고, 넷플릭스는 세계 최초로 아이들이 직접 스토리를 선택하는 ‘가지치기 서사’(Branching Narrative)기법의 맞춤형 콘텐츠를 선보여 차별화를 꾀했다. 키즈 콘텐츠의 확보전쟁이 일어나면서 키즈 콘텐츠 시장의 전성기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뽀미언니’와 ‘캐리언니’. 둘 다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의 상징적 존재다. 두 캐릭터는 예쁘고 밝고 유쾌한 이미지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더해 초등생들에게 ‘허통령’으로 불리는 ‘허팝형’도 있다. ‘캐리언니’와 ‘허팝형’의 인기에 힙입어 우리의 의식에서 희미해져갔던 ‘뽀미언니’는 다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뽀미언니’와 최근의 ‘캐리언니’, ‘허팝형’은 캐릭터 특징면에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뽀뽀뽀>의 마스코트였던 ‘뽀미언니’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해맑은 웃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뽀미언니’는 부모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닮았으면 하는 존재였다. 이는 <뽀뽀뽀>가 어른 세대가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가족적, 교훈적 내용을 지향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개구쟁이 ‘뽀식이’와 ‘뽀병이’, 또래 아이를 등장시킨 '뽀동이' 등 인기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 캐릭터들이 연기하는 짧은 꽁트나 상황극은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생활윤리를 ‘가르치는’ 교육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뽀뽀뽀> 출연진이 부르는 노래와 율동은 교육적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뽀미언니’는 말썽을 피우거나 실수를 연발하는 ‘뽀식이’와 ‘뽀병이’를 달래거나 훈계해서 어른들이 바라는 소위 ‘바른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뽀미언니’의 예쁜 얼굴과 다정한 성격은 1980~90년대 키즈 콘텐츠에서 캐릭터의 표본으로 자리잡으며 당시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TV유치원>의 ‘하나언니’나 <딩동댕 유치원>의 ‘동이언니’는 ‘뽀미언니’ 캐릭터의 연장선이었다. (참고로, ‘하나언니’의 경우는 좀 더 ‘학교 선생님’ 포지셔닝에 가까웠다. ‘뽀미언니’가 사회성, 협동정신 같은 윤리나 도덕 중심으로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의 느낌이었다면, ‘하나언니’는 한글과 단어, 숫자와 산수, 알파벳, 체조 등 전 교과과정을 가르쳐주는 역할이 좀 더 돋보였다.)
1980~90년대 키즈콘텐츠에 등장했던 ‘언니들’은 선생님에 가까웠고, 천사같은 마음씨를 지닌 인물로 포지셔닝되었다. 어린이 프로의 ‘언니들’의 모습은 오늘날에 비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와 선생님을 존경하는 유교적 가치관, 그리고 바른 어린이상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보다 엄격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흠결이 없는 완벽 존재로서의 선생님을 원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게, 당시 TV에서 방송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뽀미언니’의 변주된 캐릭터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경향은 해외 프로그램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일례로 90년대에 방송됐던 KBS2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은 ‘뽀미언니’의 해외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뽀미언니’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선생님이자 환상 속의 존재였다. 이런 ‘뽀미언니’의 특징은 2013년 <뽀뽀뽀>가 종영될 때까지 변하지 않은, 8~90년대를 지나오면서 온 세대가 ‘뽀미언니’에게 부여한 절대 기준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기침할 때, 하품할 때 입 벌리면 보기 흉하죠? 자, 노래하면서 배워볼까요?”
(1985년 8월 20일자 방송의 ‘뽀미언니’ 대사)
“작은 꼬마친구들이 힘을 합쳐서 거인에게 망원경을 만들어준 다음엔 밭이 망가지는 일이 한번도 생기지 않았대요. 그리고 몸이 커다란 거인님하고 몸이 작은 친구들은 아주 사이좋은 친구들이 됐답니다.”
(1987년 12월 2일자 방송의 ‘뽀미언니’ 대사)
반면, 2017년의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부모가 원하는 이상향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친구나 형제자매를 대체하는 존재다. ‘뽀미언니’가 흠결이 없는 완벽한 캐릭터였던 것에 비해,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개구쟁이 이미지가 강하다. ‘캐리언니’는 다양한 장난감으로 재미있게 노는 것을 즐기고, 아이스크림, 과자 같은 간식들을 즐겨 먹는다. ‘허팝형’은 물총으로 양치질을 하고 당근으로 리코더를 만드는 등 괴상한 실험을 통해 재미를 선사한다.
‘캐리언니’나 ‘허팝형’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교훈이나 윤리적인 ‘가르침’을 전달하지 않는다. “친구들 안녕!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캐리예요! 오늘은~ OOO를 가지고 놀아볼까요?”라는 대사에서 보듯, 이들의 콘텐츠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이 말하는 ‘놀이’는 ‘뽀미언니’의 놀이와는 성격이 아예 다르다. 놀이를 통해 교육을 강조하는 에듀테인먼트가 아닌, 순도 100%의 ‘놀이 그 자체’, 한마디로 아이들의 엔터테인먼트 행위인 것이다.
두 캐릭터는 노는 과정에서 때로는 엄마와 아빠가 알면 혼날 ‘장난들’, 가령, 화장실 변기통으로 실험하기(허팝형), 누뗄라잼으로 액체괴물 만들거나 된장으로 케이크 만들기(캐리언니) 같은 행동을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장난치고 놀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캐리언니’와 ‘허팝형’의 인기는 완벽한 존재보다는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 인물을 선호하는 시대상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개구진 장난을 치는 모습은 금기시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이처럼 어른들과 기존의 가치관에서는 소위 ‘나쁜 모습’으로 여겨지는 ‘말썽꾸러기’의 면모를 지님으로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어떤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완벽히 따르고 얌전히 공부를 할까. 밥보다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이 좋고, 공부보다 장난치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한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친구고, 형제나 자매이기도 하다.
똑같이 ‘언니’(또는 ‘형’)라고 부르지만, 과거 ‘뽀미언니’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선생님이었다면, 지금의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내 모든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존재이며, 나아가 아이들의 심리를 그대로 투영하는 ‘제 2의 자아’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아이들은 ‘캐리언니’와 ‘허팝형’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명 ‘거울효과’ 반응을 보인다. 2000년대 들어 키즈 캐릭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뽀로로’를 필두로 다양한 인기 캐릭터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몰입면에서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단연 압도적이다. 실제 인물이 등장해서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며 노는(장난을 치는) 것은, 컬러풀한 디자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보다 훨씬 사실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016년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주도했던 장르가 ‘뷰티’였다면, 2017년에는 키즈 콘텐츠가 중심에 섰다. ‘캐리언니’와 ‘허팝형’의 뒤를 이어, ‘꼬요언니’, ‘유라언니’ 등 다양한 언니오빠들이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계속 등장하고 있고, ‘뽀로로’, ‘핑크퐁’, ‘콩순이’ 등 인기 캐릭터들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키즈 콘텐츠의 인기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로 다음의 다섯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키즈 콘텐츠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같은 신기술과의 결합이 가장 활발한 기술 친화적 장르다. AR과 VR의 결합은 의외로 교육 콘텐츠에 많이 쓰이고 있는데,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키즈 콘텐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듀테인먼트’ 장르는 멀티 플랫폼 전략 및 유료 VOD 서비스가 가장 용이하다. 또한 문구/완구/출판/시청각교재/캐릭터사업 등 OSMU(One Source Multi Use)가 쉽고, 커머스 연계 비즈니스도 매우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콘텐츠 자체로서의 매력과 커머스 사업으로서의 매력이 가장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장르가 키즈 분야다.
셋째, 높은 확장성이다. 현재는 주로 미취학 아동들 대상의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가 대다수지만, 향후엔 초등생 대상의 교육, 엔터 콘텐츠 뿐 아니라, 부모세대를 대상으로 한 ‘육아·양육’ 분야까지 장르의 확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넷째,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 시장의 지속적인 인기도 키즈 콘텐츠 시장의 성장 요인이 될 수 있다. 친숙함과 친밀함을 무기로 하는 1인 크리에이서 시장에서, 현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세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MCN 장르가 ‘키즈’ 분야다. 교육을 전문으로 내세운 ‘꼬요언니’와 ‘유라언니’가 뜨고 있고, ‘마이린’, ‘어썸하은’, ‘라임튜브’, ‘예빈이’ 등의 키즈 크리에이터들은 성인 크리에이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차세대 유튜브 스타 자리를 노리고 있다.
다섯째, 키즈 콘텐츠는 글로벌 진출에 유리하다. 넌버벌(non-verbal)이 가능한데다 반복시청이 높은 어린이들의 특성상, 타 장르에 비해 전세계의 팬을 확보하는 것이 수월하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시작한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 라이센싱 판매를 통해 중국에 포맷을 수출한 것이나, <뽀롱뽀롱 뽀로로>를 비롯하여 <핑크퐁>, <콩순이> 등의 국내 캐릭터들이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배경도 키즈 콘텐츠 시장의 전망을 밝게 한다. 가구당 자녀수가 줄다보니, 아이를 위한 지출은 늘어나, ‘에잇포켓(8-pocket : 양가 조부모, 그리고 이모, 고모, 삼촌까지, 한 아이를 위해 무려 8명이 지갑을 연다는 의미)’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가운 것은 이러한 키즈 콘텐츠가 아이들뿐이 아니라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을 징조가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황금시대를 누렸던 키즈 콘텐츠 신드롬은 암흑기를 거쳐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부활했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뛰어넘어 차세대 디지털 한류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1980년대 <뽀뽀뽀>를 보면서 자랐던 부모세대는 이제 자녀들이랑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과 <허팝TV>를 함께 본다. 아이들의 ‘캐리언니’와 ‘허팝형’은 어느덧 부모들에게도 개구쟁이 자녀로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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