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항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마치 기적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처럼.
20대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3교대 근무로 시간을 보냈다.
약제과라는 이유로
창문 하나 없는 지하 1층 한켠에서.
6년간의 병원 근무로 지쳐있을 때,
오래된 필름 사진에 매료됐다.
좁은 공간에서 일하며,
휴일마다 예쁜 곳을 찾아서
곧잘 출사를 다녔다.
어느 날처럼 출사를 다니던 하루,
눈앞에 새빨간 양귀비 꽃밭을 마주했다.
황홀한 전경이었다.
양귀비의 야릇한 붉은색에
넋을 잃고 말았다.
꽃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그날 이후,
일주일 만에 사직서를 냈다.
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플로리스트가 됐다.
지금은 절화보단 살아있는 꽃을,
식물들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고 관리하는
정원사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믿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 곁에서 하루를 보내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날의 그 순간은 아주 작았지만,
그 작은 순간이
좋아하는 일을 향하는 길로 이끌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좋아하는 일은 어느 날 문득,
우리가 가장 지쳐 있을 때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나 역시 그렇게,
뜻밖의 양귀비 한 송이 앞에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러니 지금은
무엇이든 마음이 움직이는 일부터 해보면 돼요.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도,
언젠가 그 길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