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노래

서생원 운동회

양진형의 시⑪

by 섬트레커

서산마루로 해가 떨어지면 겨울의 섬은 바람의 나라가 된다

칠산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목세이*의 고개를 깊숙이 꺾어 놓고 징검다리 건너 우리 집 초가지붕까지 홀라당 벗겨버리고 방안에 든 나와 동생을 압송할 듯 문고리를 잡아 흔든다 우리는 초저녁 쇠죽을 쒀서 아랫목에 제법 온기가 도는 돼지 움막 옆 외양간 딸린 작은 방에서 지린내 나는 꿰맨 내복을 입고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을 청하려 하지만 바람벽에 얼굴을 내밀고 껌뻑이는 호롱불 위 여기저기 쥐 오줌 지도로 가득한 천정에선 서생원들이 무에 그리 신나는지 왕복 달리기에 이어 네댓 바퀴 릴레이를 계속하는 바람에 눈만 말똥말똥 굴리다가 괜스레 측간에 가서 반쯤 마려운 오줌을 누고 돌아와 문고리를 잡을 즈음 암퇘지는 꿀꿀꿀 잘 자라며 수인사를 건네주고 외양간 어미 소 또한 핑경*을 찰랑 서너 번 흔들어주며 좋은 꿈 꾸기를 기원해주었다 베개에 고개를 누이고 이불을 끌어당겨 다시 잠을 청하려 하면 또 시작되는 서생원들의 운동회, 니기미 좆같은 것들 잠 좀 자자니까, 끝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천장 이곳저곳을 주먹으로 몇 차례 쳐 대면 정통으로 맞은 녀석이 있는지 찍 찍찍 여기저기 죽어 나자빠지는 소리, 그리고 한동안 고요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서생원들의 운동회 -



* 목세이 : 거센 해풍을 막기 위해 조림해 놓은 소나무 방풍림의 서남해안 사투리

* 핑경 : 풍경의 서남해안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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