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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Oct 13. 2020

백두대간 삽당령에서 닭목령까지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


"왜 산에 오르느냐?” 


영국인으로 에베레스트에 세 번째 도전한 조지 맬로리는 192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강연을 마친 후 한 여인으로부터 이런 다소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예상 밖의 질문을 받고, 다소의 막막함과 당황함을 느낀 멜로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Because it is there !)"


우문(愚問)에 대한 우답(愚答)인데, 이것이 오늘날 현답(賢答)이 되고 말았다. 모든 산악인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가 되고 만 것이다. 소생 또한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왜 대간을 하느냐?”

그 물음에 “그냥, 좋아서”라고 답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두대간이 거기에 있어서.”     


처서를 지난 탓에 가을의 선선함이 느껴져

오늘('13. 8. 25) 대간산행은 삽당령(揷唐嶺)~석두봉~화란봉~닭목령까지 13.5km로 북진이다. 서울을 출발하여 대관령 터널을 넘은 버스는 강릉과 정선을 잇는 35번 국도에 진입하여 10시 30여 분에 삽당령에 도착한다. 삽당령은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묵계리를 잇는 고개인데 그 생김새가 마치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삽당령 서쪽은 오늘 진행해야 할 석두봉으로 이어지고, 동쪽은 다음번 가야 할 두리봉, 석병산으로 이어진다. 

권덕주 운영위원장의 주도로 간단한 몸 풀기에 이어 시베리아님의 구호 선창이 끝난 10시 40분경 석두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로는 비산비야의 자드락길처럼, 임도와 키 높이를 거의 나란히 하며 ‘나 대간 맞아’ 할 정도로 야트막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곳이 고산지대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숲은 야산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늠름한 기세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엊그제 처서(處暑)를 지나서인지 숲속에서는 습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제법 마르고 선선한 기운이 돈다. 처서를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예로부터 선조들은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했다. 어찌 보면 처서는 식물이 더 이상의 생장을 멈추고, 결실을 맺어 다음 생을 준비하는 변곡점이 아닌가 싶다. 


무을님골동품님을 그리워하다

오늘의 멤버는 스물서너 명으로 선두에는 신 감사님과 황 사장님, 그리고 김정은 자문위원장님이 서고 그 다음으로는 지난번 구간부터 새롭게 합류한 시베리아님을 비롯한 그 일행이다. 이어 목동 양 사장님, 고문님, 김 화백님, 소생, 무을(춤추는 새)님 순이다. 사진작가 정도가 사용할 메머드급 장비로 대간의 풍광 하나하나를 담고 있는 무을님은 골동품님이 오지 않아 신이나지 않는다며, 앞서가는 고문님에게 “석두봉에서 꼭 저를 기다려 달라.”고 애정 어린 부탁을 한다. 골동품님의 빈자리가 우리 모두에게 허전하게 느껴진다. 

사실, 오늘 소생의 마음은 바쁘다. 일치감치 선두로 나서, 목적지인 닭목령에 먼저 도착해야 만 지난번 알바로 인해 밟지 못한 1km 남짓(왕복 2km)의 구간을 벌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서서히 기회를 엿보는데 쉽지 않다. 사실,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몸에 배어 있다. 그런 상태로 20여분 걸어다보니 널따란 임도와 만난다. 이제 자연스레 앞서 나갈 기회와 공간이 확보됐다. 임도에서 다시 대간 소로길로 이어진 곳의 이정표에는 삽당령 1.3km, 닭목령 13.2km로 나와 있다. 오늘 산행거리가 13.5km라고 알고 있는데 이정표대로라면 14.5km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목동 신사 양 사장님은 “역시 본진이 쫘 악~ 들어오니 폼이 난다.”며 반색을 한다. 


오늘은 지난번 알바 구간 보충하려’ 선두 산행이 목표

잠시 포즈를 취하며 주춤거리는 사이, 후미에 있던 박 대장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와 앞장 서 기 시작한다. 소생은 반사적으로 박 대장 뒤를 바짝 따른다. 박 대장은 두 달 동안 집안 일로 산행을 하지 못했다며 마치 그 아쉬움을 한꺼번에 다 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스피드를 높인다. 소생의 뒤로는 그동안 후미 대장을 맡아 고생해 왔던 정기 부회장님이 뒤따르고 있다. 모르긴 해도 정기 부회장도 오늘 구간을 선두에 서서, 지난번 알바 구간을 벌충할 속셈인 듯하다. 속보로 완만한 오르막을 계속 오르니, 쉼터가 있고 거기에 시베리아님 일행 서너 분이 쉬고 있다. 이정표에는 삽당령 1.7km, 닭목령 12. 8km로 나와 있다. 시베리아님 일행에게 간단하게 눈인사만 하고, 좌회전하여 862봉으로 향한다.  숲은 깊고 푸르러 그야 말로 ‘숲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육산이어서 등산하기에는 최상이다. 862봉을 앞두고 길은 고도를 급속히 높여가지만 비탈길에서도 박 대장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뒤따르는 소생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가누기 힘든 거친 호흡과 함께 전신의 피돌기도 맹렬하고 사납게 질주한다. 길섶에는 새며느리풀이 절정기를 맞고 있지만 그걸 곁눈질로 구경할 뿐, 감상할 여유가 없다. 이러한 돌직구 산행은 862봉으로 보이는 곳에 이르러, 앞서가던 김정은 자문위원장임을 만나면서 끝이 난다. 

잠시 목을 적시며 김 위원장님을 먼저 보내고, 이제 속도를 늦추어 서서히 진행을 한다. 박 대장도 힘든 모양이다. 어느 순간 너비 5~6m미터는 됨직한 잡풀지대가 나타난다. 임도가 이렇게 변했나 생각도 해 보았는데 그것은 아닌듯하고 화재가 났을 때 불길을 차단하는 방화선인 모양이다. 방화선 구간에는 노오란 미타리를 비롯해 수많은 여름야생화가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 잡풀지대에서는 가을의 대명사, 억새도 이제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두타·청옥구간 동행했던 부부 산우님들과 우연한 조우

삽당령 3.3km 닮목령 11.2km의 이정표 지점, 사랑나무(소나무)가 서있는 구간을 지나는데 석두봉 방향에서 내려오던 부부 산우님들이 박 대장을 보고, 아는 채를 한다. 박 대장 또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말하자, 지난 번 두타·청옥 때 함께 했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자주 만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산행 중의 인연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과 헤어져 다시 방화벽 지대를 끼고 오르막을 오른다. 풀숲은 야생화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비와 장수풍뎅이처럼 생긴 이를 모를 검정색의 곤충은 야생화의 꽃술에 취해 카메라가 접근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니 독바위봉(978m)이다. 독바위봉에는 누울 수 있는 나무 안락의자 2개가 마련되어 있다. 시계를 보니 12시다. 배낭을 풀고, 벤취에 누어 잠시 하늘을 본다. 나뭇잎 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은 맑고 푸르다. 바쁜 산행 일정이 아니라면 이런 곳에 잠시 누워 잠을 청하고 싶다. 그런 잠은 신혼부부의 첫날밤, 즉 꽃잠에 버금가리라 생각된다. 잠시 후 정기부회장님이 도착하고, 연이어 시베리아님 일행이 도착한다. 


시베리아님 일행 뒤로 하고석두봉을 향해 정진

시베리아님 일행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석두봉을 향한다. 독바위봉에서 5분 정도 진행했을까?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건너편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1차 난코스 석두봉인 모양이다. 석두봉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나무 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이 코스가 상당히 난코스 였다고 한다.     

그러나 계단이 설치된 덕분에 그리 큰 어려움이 없다. 대여섯 평 남짓의 석두봉 정상에 서니, 서북 방향으로 저 멀리 능경봉, 선자령의 산마루가 아스라이 펼쳐져 있고, 대자연 녹색의 캔버스 위에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꽃처럼 피어있다. 그러나 동쪽사면과 남쪽 사면은 나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짐작 컨데 그나마 석두봉에서의 조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시계는 12시 30분가량을 지나고 있다. 이미 도착했어야 할 시베리아님 일행이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아래 안부(들미재)에서 점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좀 더 진행하다가 선두가 점심을 하고 있는 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한다. 10여분 정도 진행하다 보니, 아름드리 송림 사이 평편한 그늘에서 신 감사님과 황 사장님,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님이 점심을 하고 있다. 간단하게 준비한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정기부회장이 내 놓은 막걸리로 입가심을 한다. 


오늘 산행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힐링 산행

이제, 일행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화란봉을 향해 서서히 시동을 건다. 해발 900여 미터 이상을 오르내리며 길은 비단길이다. 등산로 양쪽은 널따랗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등산로 쪽으로 삐져나온 나무도 베고, 일정한 넓이까지 산죽을 베어 놓았다. 알고 보니, 강릉국유림관리소가 지난해까지 2억 5천만 원을 들여 쾌적하고 안전한 등산로 조성을 위해 힘쓴 덕분이라고 한다. 석두봉 오르는 데크와 독바위봉의 나무의자 등도 이런 차원에서 설치했다고 하니,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 좋으니 선두산행이라고는 하지만 호젓하고 느긋하다. 잠시 산행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위의 풍광을 만끽하며 소걸음 걷듯 걸어가는 우보(牛步) 산행을 선호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싸우며 정해진 시간 안에 돌파하는 스피드 산행을 선호하기도 한다. 산행거리를 짧게 하면서도 구간마다 쉬어가는 단거리 산행을 선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거리를 길게 잡아 한두 번만 쉬고 주파하는 장거리 산행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또 혼자 호젓하게 걷는 나홀로 산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동료들과 어울러 왁짝지껄하게 산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생이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다양한 산행 방식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 가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체력에 맞게, 스타일에 맞게 산행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선의 산행이 아닌가 싶다. 


고난과 역경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들은 모두는 알피니스트!

또한 동네 뒷산을 다닌다고 해서, 아니면 명산이나 대간산행, 또는 더 멀리 해외 고봉을 트레킹한다고 해서 시피볼일도 우러러 볼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비교적 잘 닦여진 등산로, 일테면 백두대간 산행은 ‘알피니즘’이 아니리고 억지소리를 한다. 그러나 소생이 보기에 전문 산악인이 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이른바 등정주의를 거부하고, 남들이 뚫지 못한 험한 벽(등로)을 개척하여 정상에 오르는 등로주의를 고집하는 것도 알피니즘이지만 아마투어 마니아들이 자기 역량에 맞게 가고 싶은 코스를 선택하여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는 것 또한 ‘알피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알피니즘의 본질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대 명산을 하든, 대간을 하든 자기가 세운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해 나가는 사람들 모두야 말로 진정한 알피니스트인 것이다.  


화란봉이렇다 할 조망 없이 밋밋 그러나 하산길 송림에서 서기(瑞氣느껴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오늘의 파이널 화란봉(1,069m) 초입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화란봉은 주능선에서 200여 m 우측으로 비켜나 있다. 그런데 막상 올라 본 화란봉은 표지석도 없고, 이렇다 할 조망도 없다. 정상의 밋밋함에 별 감흥이 없이 인증샷을 한 후, 이제 최종 목적지인 닭목령으로 향한다. 


지난번 대관령~닭목령 구간에서 봤을 때 화란봉~닭목령 구간은 꽤 급경사인 것으로 비춰졌는데 막상 진행해 보니, 견딜 만 한 급경사다. 육산인데다 경사도도 두타·청옥, 백복령 구간 나들목인 연칠성령~ 무릉계곡에 비하면 수월하기 짝이 없다. 고도를 낮추어 가자 하얀 자작나무가 군데군데 보이고, 듬성듬성 금강송이 하오의 햇볕을 받아 대낮 낮술을 걸친 사람의 볼처럼 붉으스레 하다. 


군데군데 고목들은 쓰러져, 거의 흙처럼 부스러져가고 있다. 앞서가던 김정은님은 일종의 '보시'라며 푸석거리는 고목의 썩은 몸뚱이 일부를 발로 으깨준다. 나무도 흙이되고, 사람도 흙이 된다. 다시 흙이 되어가는 나무는 우리 모두는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가는 것임을 명징하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화란봉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소나무들은 군락을 이루며 멋진 모습으로 산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매끈매끈하게 쭉쭉 하늘을 향해 치솟은 소나무에서는 범접하지 못할 서기(瑞氣)가 느껴진다김정은 자문위원장님은 자신은 소나무를 너무 좋아한다며 이 광경을 놓치지 않고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신 감사님 또한 예사롭지 않게 기품이 넘치는 소나무를 보고는 옛사람들은 저런 소나무에게 장군송이라는 칭호를 붙여 줬다며 해박한 상식을 자랑한다소생 또한 오펠리스크 보다 더 늠름한 기상으로 치솟은 거송을 카메라와 마음속으로 깊이 담는다옛 선비들이 왜 다투어 소나무를 사모하며시화(詩畵)의 소재로 삼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겠다.   

  

소나무야 소나무야언제나 푸른 네 빛

승처상심자애(勝處傷心自哀)라는 말이 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경치 좋은 곳에 와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슬퍼진다.”는 뜻인데 마치 이런 풍광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한다. 500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거송(巨松) 앞에 서니, 인간의 한평생은 한 없이 왜소하고 가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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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에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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