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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Sep 06. 2016

전쟁 유감

분단의 아픔이 아홉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다.


하교길에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족쇄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듯 힘겹고, 무겁기만 하다.



친구들의 하하, 호호 웃음소리 속 이야기 꽃은 내 귓전에 맴돌더니, 어느새 집 앞에 당도하고 말았다. 누구도 이 우주같이 커져 버린 내 고민을 알리 없다.


벙어리 냉가슴 앓 듯,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도 몰랐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벅찬 상황의 빨간불이작동 중이었다.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아, 점점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울컥하듯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스멀스멀 무언가 올라 오려는 것을 꾹꾹 참아 침 삼키 듯 꾸역꾸역 넘기고 있는게, 당시 나의 최선이라 생각했다.


 결코 울지않으리.


내가 우는 순간,

모든 일은 들통이 날 테고, 겁먹고 있는 내 모습에 가족 중 누군가는 소리치며,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으리라.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복잡하고 역부족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이 탄로나면 정말 큰일이다.

그러니, 울지 않을테야.


나의 생각대로 가슴이 따라줘서, 다행히 그날밤은 울지 않았고, 가족 중 누구도 은밀한 나만의 사건을 눈치챌 수 없었다.

(극히, 개인적인 사건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내가 바라본 세상의 모순을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의 걱정거리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날 아침 등교를 앞둔, 8살 국민학교 2학년 나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고,  용기는 콩알 만 해졌다.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의 호랑이 같은 눈이 나를 쏘아보며 뭐라 하실려나?

아마 나와 같은 상황인 친구들도 게 중에는 분명 있을텐데,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리도 태평스러운 것 인가?

그리고, 내가 뭘 그리 잘못한걸까?'


마음 졸이며,

교실에 들어선 나와 달리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평 섞인 듯 마음속으로  툴툴대며 중얼거렸다.

냉정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라도 치듯, 이내 아무렇지 않는 듯 자리에 앉았다.

분명 어제의 사건은 어떻게든 해결이 되어야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라 생각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10분 뒤 즈음 아침 조회와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 오신 담임 선생님의 모습은,

푸르른 5월 하늘의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직접 보여주기라도 한 듯, 다림질에 제대로 각이 세워진 스카이 블루의 셔츠가 교탁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제 종례시간 선생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생각나자,  머릿속에 쭈뼛하게 늘어선 바늘이 돌아다니며 겁에 절여진 나를 공격이라도 하듯이 달려드는 것만 같아, 이내 책상 끝 모서리에 눈을 떨구고 말았다.


이어서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우리에게 아침 인사와 함께 1교시 수업은 시작되었다.


국어시간 내내 무슨 내용으로 수업을 했는지, 기억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오후까지 이어진 수업시간 내내 조마조마한 내 모습은 마치 만지면 공을 만들어버리고 움찔하는 쥐며느리 같은 모양처럼 버티고 쥐죽은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혼자만의 버둥거림으로 전쟁같은 하루를 마쳤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비로서 깨달았다.


어제 담임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하셨던 모든 말씀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아! 이제 나는 살았구나'


그날 밤 방에 드러누우면서 외쳤던 마음 속 절규와 함께 거짓말을 했던 선생님의 마음을 혼돈 속에서 결코 이해 할 수 없었고,

용납하기도 힘 들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기억을 이 외마디 절규와 함께, 또렷하게 기억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이유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당시 담임선생님의 광적인 표현이 8살 여자 아이의 어리고 순수한, 철들지 않은 마음에 치명적인 흉터를 남기게 했던 사건으로 남았다.


분명 나는 6.25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아니었으나, 못지않게 철저한 멸공과 반공교육으로 다져진 학습효과로 공산당 괴로군은 타도의 대상이라 믿었다. 또한 휴전상태에 놓인 분단국가는 언제든지 전시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교육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남북 대치상황을 지켜보며, 언제든 일어날지 모르는 전시상황을 늘 머릿 속에 재연하며 살아온 불안한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였던 것이다.


비록 내 어릴적 기억을 빚대지 않아도, '전쟁'이라는 이 단어가 갖고 있는 폭력성과 파괴력, 야만성은 어떤 단어로 바꾸어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만행임을 나이가 들수록, 아니 내가 부모세대가 되면서 곱절 느끼고 있다.


2015년 8월 4일 우리군 GP 초소 가까운 곳에 북한군의 목함지뢰 설치로 우리군 장병 두사람의 부상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규명을 명확히 하기 위한 우리군 측의 대북방송 재계와 이어진 일련의 북한과의 대치상황은 전시상황을 방불케했다.

결국 남과 북은 무박 4일동안의 마라톤 협상 끝에 '유감'과 '대북방송 중지'라는 어설픈 합의문을 각자 낭독하며 일단락 지었다.


7000만 겨레 한민족이 일시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가슴 졸이게 한 장본인들은 정작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얻을 것은 얻어야겠다는 독한? 마음이었는지 회담 결과에 대한 합의문을 들고서는 자화자찬 하고, 언론은 유래없는 성과라며 칭찬일색이다


그러나, 국민은 심히 여러가지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가지 정말 궁금한 것은 얼마전 일본 군 위안부 만행에 대한 아베정권의 '유감' 표명은 결코 사과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정부와 언론이 이번 북한 목함지뢰 사고에 대한 '유감'은 유래없는 전격적인 북한측의 사과라고 거듭 되새기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언론은 도대체 '유감'이라는 사전적인 뜻을 알고나 남발하는 것인가?


아~~40여년전 나의 국민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발언에 대한 나의 유감이 사그라들지 않는 껄쩍지근한 날이다.


사전적 의미의 유감은 이렇다.

유감 ㅡ[명사]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런 유감스러운 날 듣는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 Op. 49의 후반부 포탄소리와 브라스 밴드 금관악기 소리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퇴각과 러시아군의 승리를 알리는 전쟁 속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정치가 예술이 된 날이다.




2015. 8. 26. 佳媛생각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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