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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Aug 13. 2017

숨 죽이다.

80년 5월, 광주


 


" 대문 잠궈 놨으니, 이제 밖은 아예 나가지 말고,

방문도 꼭 잠그고, 바깥 창문도 닫고, 커텐도 쳐라 "


5월 따뜻한 아침 공기는 꼭꼭 숨겨진 공간에

몰리어 어디로 빠질데 없는 구석에 쳐박혀

누구도 알아보지 못 할 어둠 만을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창문으로

내다 보면 안된다."


평소와 달리 무겁게 깔린 목소리에

단호함이 깃든 아빠의 명령 속에는

밖에  무슨일이 생긴게 분명하다.


우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집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무슨일 일까?"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부터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맨날 학교 가는거 지겨웠는데,

내심 학교 안 간 첫날은 기분이 그럭저럭 좋았다.


둘쨋날 아침에 일어난

아빠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말투에

가슴이 울렁대고 왠지 주눅부터 들기 시작한다.


"어제 오후에 시내버스가 불타고 경찰들이

주변에 쫘악 깔렸대요"

엄마는 동네사람들에게 들은 소식을 전하며

아빠와 이야기 하신다.


그날 오후 나는 바깥 세상이 궁금하기 시작했다.

찬란한 햇빛이 작은방 안에 들어 오고 싶어

안달난 듯 커텐 사이로 빛이

여기저기 새어 나온다.


창문을 열 수 있는 용기는 없어도,

커텐은 슬그머니 들춰서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빠 몰래...


몇 대의 트럭이 지나간다.


하얀 휘장에 뭐라고 씌여져 있는 트럭 안에는

여러명의 시민군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선채로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숨

죽이며 바라보았다.


1980년 5월 그날의 풍경은 지워지지 않는 붉은

색 파편이 되었다.

전쟁같은 시간을 보낸 이들의 가슴은

이미 녹아 없어진 비극이 되어 버렸다.





'택시운전사' 영화가 상영 중이다.


80년 5.18일!

광주의 핏빛 그림자의 참상을

그린 영화 속 장면 하나 하나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추스려지지 않는다.


광기어린 공수부대와 살기 가득한 눈빛의

사복 경찰들에게 붙잡혀

무고하게 학살당한 광주시민의 영혼에게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해 준 밀알 같은 수많은

영혼 앞에 무한한 감사.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이 세대의 부단한 노력.


다가오는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산교육의 지침.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이제는 희극으로 맞이하길 바라는 염원.


내 기억 저편,

트럭 속 구호를 외치며 지나갔던 청년들은

영화 속 무수한 평범한 청년 '구재식'이었음을...


재식이 내게로 걸어 온 날이다.


37년 전 숨 죽이며 창문을 내다 보고

어리둥절 했던 소녀의 붉은 기억은

광주를 위로하는 강을 건너가고 있다.




힌츠페터 기자의 헌신에 감사하며,

영화 속에서 역사를 다시 쓰다.

2017.8.13.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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