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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an 13. 2019

결혼해도, 나답게

결혼 후 마음가짐에 대하여 

늘 나답게, 나를 존중하며 :)

"결혼을 해도 넌 그대로인것 같아!"

이 말은 칭찬일까 욕일까?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칭찬으로 생각한다. 결혼을 해도 내 자신, 그러니까 내 자아를 잃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다보면 새로운 가족이 늘어나고, 처음 겪어보는 관계 형성에 자아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종종 겪게 된다. 둥글둥글하게 웃으며 살고 싶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나'를 억지로 끼워맞춰 내 본연의 생각, 가치관까지 흐리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인데 괜히 이 선택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몇가지 결혼 후 마음가짐에 대해 고민을 해야만 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결혼을 하니 사람들은 내게 기대를 하기 시작한다. "주말에 요리는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요리는 많이 손에 익었니" 등의 이런 기대를 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난 요리를 잘 못한다. 취미도 없고 흥미도 없다. 가끔 빵이나 마카롱을 만들었을 때 보람이 생기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다. 나머지 요리는 재료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어 뭐하나 진득히 만들지를 못했다. 부끄러운 소리지만 김을 내가 구우면 석기시대 연탄이 되고 계란을 내가 부치면 스크램블이 된다. 


요리는 못해도 신상품 기획이나 UX 발굴은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은 요리보단 그쪽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한 까닭이 큰 것 같다. 한정된 시간 안에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수밖에 없다. 결혼을 했다고 어느날 갑자기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원더우먼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내가 요리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돈도 잘벌길 기대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내 동의 없이 마음대로 기대를 하는 것이고 어차피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사업전략도 잘 구상하고, UX 기획도 잘하는 사람이고 싶지만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원더우먼'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노력은 할 수 있다.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 마음대로 내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 애써 부응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냥 나다.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관심없고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억지로 시간을 보내기보단, 

여태 살던대로 대안을 찾으면 그만일뿐이다.  



사랑받기 위해 가면을 쓰지 않기로 했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여는 스타일은 아니다. 172cm의 깡 마른 체구로 새하얀 얼굴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있어 한 밤중에 머리를 풀고 화장을 지운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약간 귀신 포스가 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내가 먼저 웃지 않으면 아무도 쉽게 내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내가 먼저 깔깔대며 웃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누군가와 관계가 형성되는 스타일이다. 나도 사회인이라 앞에서는 마구 웃고,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 좀처럼 나는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스타일도 아닌데다 말을 많이 하면 일단 기가 빠진다. 소수의 한정된 친구들하고만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꽤 내향적인 사람이다. 


갑자기 결혼이란 것을 하니 갑자기 여러 사람들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친해져야 하는 상황들이 부딪혔다. 드라마 속의 며느리들은 애교있게 "어머 어머니~"하며 웃으며 달려가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한없이 어렵기만 하다. 이상하게 친정 부모님께는 징그러울 정도로 애교가 많은데 시댁 식구들하고는 약간의 거리가 존재한다. 


처음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시댁 식구들은 환영한다며 내게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난 아직도 이 순간을 기억하고 아마 죽을 때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어머!! 우리 어머니, 시누이 짜~~앙!" 이러면서 호들갑을 떨지는 못했다. 그냥 이런 선물을 어른들께 받아본게 처음이라 어리둥절해 로보트처럼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만 드릴 뿐이었다. 분명 사랑받기 위해 먼저 애교있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애교없이 대답하지 못했을까?하며 내 자신을 반성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내 결론은 노력은 할지언정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수십년간 살아왔던 그 방식 그대로 나답게 살기로 했다. 한번 볼 사람들이라면 가식으로 연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시간 마주 볼 사람들이라면 단순히 '사랑받기 위해' 연기를 펼치는 것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내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다.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여는 스타일인데 열리지도 않은 마음의 문을 갑자기 확 열어 어색한 연기를 펼쳤다가 나중에 '스트레스 받아. 연기하는 것도 피곤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천천히 친해지면서 마음의 문을 열며 서로의 문화에 대해 조율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하루 업무가 끝나는 시간은 기본 10시 30분정도이다. 신혼 초기에는 내 남편이 거의 매일같이 끝나는 곳으로 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그땐 남편의 일이 나보다는 일찍 끝나 그럴 수 있었고 덕분에 편안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부터 남편이 바빠지며 여전히 내가 더 늦게 끝나긴 하지만 남편 역시 8~9시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매일같이 연달아 야근을 며 그는 피곤해하였고 예전만큼 자주 데리러오지는 않는다. 이해 한다. 그런데 어느날 11시 정도 끝나 집으로 가려는데 문득 데리러왔던 예전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반대로 내가 야근하는 입장이 되어보면 이해도 되지만 나는 정작 데리러 오는 것보다 한마디의 연락, 그러니까 관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서글펐다. 


옛날 같았으면 괜히 민망하기도 하고 내가 속이 좁아 보이기도 해서 그냥 나 혼자서만 토라져있었을 것이다. 혹은 약간 저기압 상태로 말도 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차근차근 했다. 


"내 퇴근 시간이 11시가 넘어가면 내게 데릴러 갈까? 라는 연락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연락을 해도 나는 당장 튀어 오라고 할 사람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오늘 11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데 피곤해서 쌍코피 터지는 줄 알았다. "


내가 느낀 감정, 앞으로의 개선 사항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니까 내 자신이 속좁은 못난이 같이 보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는 속이 다 시원했고 남편은 바로 이해하며 고쳐나갔다.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무척 고마워 아주 늦은 시간 퇴근을 하더라도 남편에게 가급적 좋은 이야기,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주 작은 용기, 그러니까 솔직하게 내 감정을 이야기하자라는 출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혼하기가 두려웠던 이유는 결혼을 통해 '내 자신을 잃게 될까봐' 그래서 내가 불행해질까봐 실은 그게 두려웠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용기와 몇가지 내가 세운 원칙을 갖고 생활을 하면 결코 나를 잃게되는 일 따위는 없다. 나를 버리면서까지,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결혼을 해서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내가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우리 모두도, 자신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를 지키는 것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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